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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1학기는 내가 겪어본 14년 학창 시절 중 가장 바쁜 학기였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지만, 수면과 식사 시간을 조절해야 할 정도로 노력해야 겨우 내가 만족할 만큼 과제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만족은 상대적이라 내 기대치를 낮추면 좋겠지만, 이미 기대치는 당시 상황에 고정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 학기를 살면서 스스로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여러 번 자문했다. 그래도 나는 이번 학기가 힘들고 싫다기보다는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학생으로 산 지 14년 만에 처음으로 정말로 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노력은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내 주변에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 전자회로를 비롯해 나를 공부하게 만드는 과목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줄어든 대면 활동 같은 주변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자유 의지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 같은 외력이라고 생각한다. 외력은 삶이 어떤 속도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운명 같은 것이다. 내가 사회적 외력을 거스를 만큼의 힘을

78내림돌 | 문병필 기자 | 2021-06-27 19:57

매일같이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때문에, 이제는 밖에서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 자체가 꺼려지곤 한다. 사실 나는 진성 집순이라서,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기 싫던 일이라도 금지해 버리면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보가 있어, 왠지 모르게 집에 있으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폐쇄된 공간처럼 느껴지는 내 작은 방에 바깥과 이어지는 통로를 뚫어주자는 생각을 했다. 물론 물리적인 통로가 아니라, 내 노트북과 휴대폰으로 창문을 만든 것이다.마치 만화 도라에몽에 나오는 ‘어디로든 문’처럼, 원하는 장소를 구글에 검색하면 실제로 가서 보는 것보다도 더 생생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관광 도시인 베네치아에서 시작해 본다면, 먼저 베네치아를 멀리서 본 풍경을 찾을 수 있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곤돌라에 탑승하고 있는 모습도 보고, 산 마르코 성당과 리알토 다리를 지나갈 수도 있다. 이렇게 이미지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관광 코스를 둘러보는 기분을 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MapCrunch’라는 사이트에서는 구글 맵을 기반으로 임의의 위치에서 시작해 공항을 찾는 게임을 할 수 있다. 주위를 마음대로 둘러볼 수도 있고, 실내

78내림돌 | 소예린 기자 | 2021-05-18 04:26

비대면 강의가 진행됐던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대학 익명 커뮤니티에서 가족 간 갈등에 대한 글을 주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한 식구로서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으니 이 기간을 소중히 누리자는 글은 많은 공감을 얻어 인기 게시물이 됐다. 글쓴이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마음가짐만으로는 갈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답답했다. 왜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이따금 서로에게 감정이 폭발하고 벗어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걸까. 나는 건강한 가족은 무엇이며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찾고자 최광현의 ‘가족의 두 얼굴’이라는 책을 읽었고, 그 내용을 짧게나마 공유하고자 한다.심리학적으로 어린 시절은 현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쉽게 투사하고, 자라오면서 익숙해진 가족 전통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저자는 이런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선 ‘객관적인 직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외로움을 예로 든다면, 이 감정에 함몰되지 말고 실체를 알아내 상대가 아닌 자기 내면에서 오는 감정 때문임을 설득하는 것이다. 또한, 가족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가족 안 사각지대를 인정하고, 가족

78내림돌 | 박지우 기자 | 2021-02-28 03:09

폭풍 같은 시험 기간을 보내고 실질적으로 남은 것은 한 문자의 학점과 지친 몸 상태뿐이었다. ‘힐링’이라는 단어를 찾기 위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 재충전과 기억에 남을 시간을 내게 안겨 주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면서 여행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열심히 학기를 보낸 후에 원하는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면 정말 슬플 것 같았다. 또 목표를 향해 달려왔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그러다 문득, 아침에 일어나서 노래를 듣다 문득 행복감에 휩싸인 나를 발견했다. 나는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나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따뜻한 말들로 이뤄진 가사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리고 노래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상황이 바뀌기 힘드니 나를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 보기로 했고 그것들을 마음껏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그리고 새로운 만남과 인간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가까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자고 다짐했다. 상호 작용 단절이 환영받는 지금의 상황 때문에 놓치고 있었던 소중한 주변 사람들은 없

78내림돌 | 박은하 기자 | 2021-01-02 19:39

부모님의 막내아들이자 형의 동생으로 태어났고 어렸을 적 유난히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던 나는 가족에게 항상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점차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려 했고, 가족들을 멀리했었다. 그랬던 가장 큰 원인은 당시 나는 열심히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노력하지 않는다는 걸 아셨기에, 부모님은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나는 그 대화 자체에 피로를 느꼈다. 형은 다른 학교에 진학하기도 했고, 일찌감치 학교 공부 외의 것에서 진로를 모색 중이었기에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형과는 심하면 일주일에 말을 한마디 할까 말까 할 정도였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기숙학교에서 생활했기에 상황이 더 심해졌다. 친구들은 저녁 시간이 되면 다들 각자의 전화기로 가족들과 통화했지만 나는 그 시간에 잠을 자거나 운동을 하러 갔다. 이후 대학생이 돼서는 부모님과 다투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주 연락드리진 않았다. 그 자체로 어색하기도 했고 딱히 대화할 주제가 없었다.이랬던 내게 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생활했던 올해 1학기는 다시는 없을 소중한 시간이었다. 부모님은 출근하시느라 바빴고, 형은 입대를 앞두고 친구들을 만

78내림돌 | 손도원 | 2020-11-27 16:47

제414호 78내림돌 기사인 ‘창조적인 삶’을 읽고, 기사를 쓴 전 기자였던 이민우 학우와 대화하며 느낀 내용을 써보려 한다. 이민우 학우는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특히, 우리대학 학생들이 성적을 위해 기출문제를 보고 유형을 암기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공부인지, 더 나아가 사회의 부품이 돼가는 과정이 아닌지에 대해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렇게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이 학우의 모습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반면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가치관이 없다. 주로 “가치관이 없다”, “줏대가 없다”와 같은 말은 부정적으로 들리곤 한다. 하지만 가치관이 없는 것이 나의 가치관이다. 수학에서는 답이 자명하지만, 세상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다양한 관점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타협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가치관이 뚜렷하면 ‘반대되는 가치관’이라는 장애물이 생긴다. 그리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위험과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장애물들을 피하려고 “그럴 수 있지”,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한다. 나는 이상과 현실

78내림돌 | 문병필 기자 | 2020-09-03 15:53

내 방 책상 앞에는 창문이 있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그냥 어느 집에나 있는 창문이다. 나는 이 창문 너머의 하늘을 본다. 공부에 지치면 한 번, 멍하니 한 번, 배고파서 한 번. 유독 날씨가 좋았던 올 한해는 하루의 하늘을 눈에 담았다. 외출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에 바깥의 변화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하늘만 보면서 창 너머의 햇살이 얼마나 좋은지, 어떤 바람이 부는지, 어떤 계절의 냄새가 나는지 상상할 뿐이었다. 정말 답답하고 우울해서 밖에 나가고 싶어도 오늘의 여유가 내일의 결점이 될까 두려워 참고 버텼다. 세상과 단절된 집, 작은 방에서의 삶은 내 마음을 구겨 작게 만들었다. 열심히 살자는 다짐은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는 집착으로 바뀌었고, 혼자 건네는 칭찬은 익숙해져 격려의 방법을 잃었으며 나를 보는 눈빛은 내가 짊어질 책임과 부담이 됐다. 좁아진 마음과 함께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수업을 듣고 숙제하고 공부하는 하루를 반복했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모른 채 해야 하는 것만 알았다. ‘나’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내 삶은 완벽하게 살아져야 했다. 작은 마음과 나에 대한 질책은 세상을 그저 내 방 앞 작은 창문을 통해서만 볼

78내림돌 | 백다현 기자 | 2020-07-14 19:09

“진정한 친구 세 명을 사귀면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나는 중학교 때 이미 이 인생 목표의 3분의 1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좋은 친구를 만났고, 평생 함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친구에게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내일 군대에 간다는 것이다. 같이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떠올라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입대를 앞둔 친구에게 밥을 사주기는커녕,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간단한 말 몇 마디밖에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친구는 계속 대구에서 학교에 다녔고, 나는 부산에 있는 학교로 가게 됐다. 친구가 휴대폰이 없었기 때문에 평소에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고, 방학 때마다 얼굴을 보며 노는 게 다였다. 그러나 그것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핑계지만, 나는 방학 때마다 바빴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친구의 수능 준비에 방해가 될까 봐 만나지 않았다. 수능 전날 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여전히 친구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에 기뻤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친구는 금방 잊혔다.그렇게 친구를 잊고 살던

78내림돌 | 유민재 기자 | 2020-07-06 21:46

학교생활에 지쳐 있었을 때, 오랜만에 하늘을 봤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눈물 같았다. 마음이 뭉클했고 뭔가 감격스러운 느낌도 났다. 피폐해진 생활에서 가슴이 뛰는 것을 체감했다. 그리고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하늘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놀이터에서 뛰어논 후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앉아 하늘을 봤다. 산 정상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하늘을 온몸으로 느꼈다. 텐트 안에 가만히 누워 별을 세었다. 어렸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하늘을 봤다. 생각이 없는 채로, 근심이 가득한 채로, 행복한 채로. 기분과 상관없이 하늘을 보면 심장이 뛰었고 기분이 좋았다. 파란 하늘은 상쾌함을 줬고 붉은 하늘은 따뜻함을 줬으며 검은 하늘은 뭉클함을 줬다. 그리고 까만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은 세상에 대한 신비함을 줬다. 높은 곳에 있으면 하늘이 손에 잡힐 것 같고 아래의 시간은 멈춘 듯이 보인다. 하늘을 볼 때마다 감각과 생각이 깨어난다. 이런 느낌이 좋아서 하늘을 좋아한다. 밤하늘을 보고 나면 깊은 생각에 잠긴다. 새벽의 감수성은 오글거리지만, 나는 그런 오글거림마저 좋다. 나의 내면, 나의 솔직한 심정,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78내림돌 | 백다현 기자 | 2020-02-13 23:20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워라밸은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Balance)’의 줄임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고등학교 때 한 해의 트렌드를 전망하는 ‘트렌드 코리아 2018’이라는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됐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야근하며 일 중심으로 사는 것이 당연시되고, 학생들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달라진 사람들의 인식을 새삼 느낄 수 있어서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실 고등학교 때에는 바쁘게 입시 준비만 하느라 워라밸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꼈다. 하지만 지난 학기 들어 그것이 필요하다 싶어 실천하기로 결심했다.지난 2학기 들어 워라밸의 실천을 결심한 건 지난 1학기보다 바쁜 시간표 때문에 과제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했고, 수업 들으랴, 과제 하랴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남은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어 침대에서 핸드폰만 보다 잠드는 날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는 시간을 핸드폰만 하며 ‘때우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워라밸의 실천을 결심한 후,

78내림돌 | 김지원 기자 | 2020-01-05 19:25

우리 분반 19학번 학생들은 다른 분반들에 비해 유난스레 분반 친구 생일을 챙긴다.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롤링 페이퍼와 선물을 준비해 수여식을 진행하고, 사진도 모아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글을 올린다. 이렇게 유난을 떨게 된 배경에는 생일축하준비위원회(이하 생준위)가 있다. 생준위는 말 그대로 분반 친구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일을 맡는 단체다. 지난 2월, 새내기새로배움터에서 분반 선배가 우리에게 너희도 생준위를 만들지 않겠냐고 물었다. 당시 어중간한 감투 쓰기와 단체 소속에 목말랐던 우리는 어벤져스 마냥 이 사람 저 사람이 자원해 생준위를 결성했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이하 톡방)을 개설하고 어영부영 첫 회의를 할 때만 해도 어떻게 생일을 축하할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어느덧 반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나름대로 체계가 잡혔다.누군가의 생일이 일주일 전으로 다가오면 발등에 불붙은 사람처럼 급하게 톡방을 개설해 사진을 모으고 편지를 쓴다. 이 과정이 제일 힘든 단계다. 롤링 페이퍼를 써야 할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분반 친구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롤링 페이퍼를 수합해 보면 아직 쓰지 않은 사람은 많은데 쓰려는 사람은 없다

78내림돌 | 김종은 기자 | 2019-12-05 12:52

고등학생 때부터 어떻게 살지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엔 삶의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그걸 모른다고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그만두고 어떻게 살지 고민했다. 주로 내 고민은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냐에 대해 꼬리를 물고 문답을 반복하면서 변증법적으로 이뤄졌다.최근에는 중간고사 시험 기간이었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결국, 현실과 타협해 장학금을 잃지 않을 것 같은 선에서 공부했다. 주위 친구들은 다 언젠가 쓰이겠지라는 생각으로 학점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개념을 다 증명하고 이해하는 공부를 해야지 성적을 올리기 위해 기출 문제를 보는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푸는 건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상황에서 조건을 조작하는 과정이다. 이걸 잘하는 것은 사회의 부품으로서 명령을 잘 수행하도록 작동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이 만든 지식을 이해한 정도를 확인하는 지표가 점수밖에 없기 때문이겠지만.아직 어린 마음이지만, 사회의 한 부품으로 작동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사람

78내림돌 | 이민우 기자 | 2019-11-08 15:32

지난 9월, 말로만 듣던 중고나라 사기를 당했다. 절판된 서적을 구매하려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책 사진과 함께 제시되는 적절한 가격에 충동적으로 돈을 부치고 난 후 모든 연락이 끊겼다. 판매자가 전화를 받지 않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게 벌어진 악몽과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중고 거래를 많이 해와서 나름대로 믿을 만하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안거함 속에서 위기는 찾아왔고 대처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사기를 당한 직후 끓어오르는 감정 속에서 대응책을 필사적으로 찾아봤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됐다. 사기꾼 검색 사이트에서 미리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입력해 봤다면, 사기꾼 조회가 가능했을 터였다. 과연 입력한 전화번호에는 20여 건의 사기 이력이 조회됐다. 왜 일이 끝난 후에야 이 사이트를 알게 됐는지 스스로 한탄했다. 33,000원의 돈이라 그냥 포기할지 고민했다. 그런 도중 사기 피해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초대됐다. 그중에는 수십만 원의 피해를 본 사람도 있었다. 적은 액수라도 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받았다. 사기꾼이 처벌받고 추가 피해가 더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입출금 명세서, 문

78내림돌 | 최수영 기자 | 2019-10-18 15:23

대략 20만 년 전 이래로 존재한 인류는 다른 사람과의 친밀관계를 원해왔다고 한다. 과거부터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삶을 살아가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에 다수의 사람이 남들과 힘을 합쳐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고, 또 누군가는 일생의 동반자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세상’이라는 단어를 찾으면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사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뜻과 함께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 또는 그 기간의 삶’이라는 뜻이 등장한다. 개개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이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사회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을 혼자 살아나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외로운 삶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곳이기에,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을 파악하거나 이해하려는 행동은 자연스러운 행위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단순한 배경에서 심리학에 흥미를 느꼈다.이번 여름 방학 기간을 이용해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계절학기로 심리학 수업을 듣게 됐다. 대략 한 달 동안 수업을 들어보니 심리학에 대한 나의 내적인 기대가 실제로 배우는 심리학 과목과는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꿈

78내림돌 | 손주현 기자 | 2019-09-05 19:40

생활관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면 온갖 소리가 들린다. 아침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공사하는 소리, 저 멀리 중학교의 종소리도 들린다. 점심 먹고 방에 돌아와 창가 책상에 앉으면 중학교 방송부에서 점심시간이라고 음악방송을 하는 소리도 살며시 들린다. 가끔 비행기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저녁에는 대학원 아파트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소리, 학교 앞 큰길에서 퇴근하는 사람들의 승용차 소리, 버스 소리가 공기를 타고 들려온다. 달이 뜨면 풀벌레 소리, 학교에 눌러앉은 수많은 길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잠들지 못하는 학교의 밤을 채운다. 야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엔진소리와 술 마시고 들려주는 노랫소리는 덤이다. 해 뜰 때까지 깨어 새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으리라.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보면 문 닫히는 소리와 잔기침 소리가 들리고, 빈 강의실에서는 에어컨과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기계의 소리만 그 공간을 채운다. 한낮의 식당은 수많은 말소리와 음식이 나왔다는 벨 소리가 가득하고, 한밤의 통나무집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술과 안주로 푸는 사람들의 수다로 채워진다. 밤의 학생회관에는 공연을 준비하는 동아리들의 음악 소리가 가득하고, 연구실에는 실험장비의 윙윙대는 소리가 멈추

78내림돌 | 김성민 기자 | 2019-06-13 13:36

뽀얀 스케치북과 낡아빠진 크레파스 통을 가지고, 매번 똑같은 그림을 그린다. 끝이 눌려 뭉뚝해진 빨간 크레파스로는 한쪽 구석에 동그란 태양을 불어 넣는다. 은은한 주홍빛을 띠는 불가사리는 노란 모래를 점 찍어둔 백사장에 살고 있고, 바닷속에는 초록 크레파스로 이름도 모를 해초를 담는다. 남색 티셔츠를 입은 채 얼굴도 표정도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소년의 손에는, 보라색의 조개가 들려있다.어릴 적 그렸던 그림들은 항상 비슷했다. 해안가 끄트머리에는 회색빛의 방파제 위에 빨간 줄무늬를 가진 등대가 서 있고, 끝이 날카로운 검은색 크레파스로는 짱구 눈썹 같은 갈매기를 그렸다. 네모나고 헤진 플라스틱 크레파스 통 안의 여러 가지 것들로 항상 일정한 무엇인가를 뱉어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것은 짧고 뭉툭한 크레파스가 됐고, 또 어떤 것은 새것처럼 길고 날카로운 크레파스 그대로 남았다.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그리고 초록색. 많고 많은 크레파스 중 항상 가장 먼저 닳았던 것은, 파란색 크레파스였다. 날카로운 크레파스 끝이 조금씩 무뎌질 때면, 그것을 덮고 있는 종이 쪼가리를 떼어내고 손에 크레파스를 묻혀가며 계속 그림을 그렸다. 파란색으로는 항상 스케치북의 절

78내림돌 | 이신범 기자 | 2019-04-24 13:33

봄이다. 겨울 속에 웅크렸던 만물들이 기지개를 켜고 깨어난다는 봄이 왔다. 봄을 알리는 노래들이 하나둘씩 발매되고, 우리나라 국민 봄 가요라고 할 수 있는 ‘벚꽃엔딩’이 길거리에 울려 퍼지면 나는 봄이 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사실 봄은 사계절 중 그 어떤 계절보다 중요하다. 토론에서 찬성과 반대 중 어느 쪽에도 의견을 드러내지 않지만, 토론을 이끌어가는 사회자의 역할 같은 계절이다. 애매해 보이지만 여름과 겨울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고, 그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아니 절대 없을 수 없는 계절이다. 되돌아보면 나는 어렸을 때 봄의 필요성과 역할을 이해하지 못해서 정말 단순히 봄을 싫어했다. 춥거나 덥거나 둘 중 하나만 하면 좋을 텐데 봄은 항상 그 두 가지를 다 해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싫었고, 애매하게 따뜻한 햇볕과 애매하게 차가운 바람의 이질적인 조합이 너무 거슬렸다. 그런데 요즘 그렇게 싫어했던 봄이 그립다. 학교에서 벚꽃이 필 때쯤 중간고사를 보고, 봄이 가장 바쁜 학기 초라 봄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봄이라는 계절 자체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짧아지고, 온 세상을 뿌옇

78내림돌 | 김영현 기자 | 2019-03-29 16:47

나는 바쁘게 살고 있다. 방학 때마다 동아리 합숙으로 남아 공부하는가 하면, 때로는 훌쩍 여행을 떠나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학기 중에도 이것저것 다양한 활동과 대회에 참가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학업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살아왔다. 태생적으로 가만히 누워서 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면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먼저, 나는 아직 젊다.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다. 때로는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벌써 1학년이 끝났다며 이제 늙었다고 하소연을 하지만,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안다. 아직 하계 인턴십 프로그램이나 단기유학과 같이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도 다 참여하지 못했다.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방에 틀어박혀 있기에는, 젊음으로 견뎌낼 수 있는 힘든 경험들을 놓칠 것만 같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은 미래를 미처 다 설계하지 못한 내게 아주 훌륭한 영양분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다.또한, 아직 내가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도 많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제일 잘난 줄만 알았다. 하지만 우리대학에 온 뒤 나보다 한발 앞서 나간 선배들을 보면서, 내가 아직 부족한 부

78내림돌 | 국현호 기자 | 2019-02-28 03:01

얼마 전 사촌 동생을 만났다. 심심하면 뛰어다니며 사촌 형들을 쫓아다니고, 부모님 휴대전화로 유튜브를 보다가 그만 보라면 울상 짓는 평범한 유치원생이다. 우리도 어렸을 때 지치지 않고 뛰어다니며 부모님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땐 유튜브가 아니라 비디오테이프를 봤다. 눈치챘겠지만 지금 유치원생들과 우리는 이미 우리와 부모님 세대만큼 달라졌다.주5일제가 부분적으로 적용되면서 2주에 한 번 학교를 쉬던 시절도 있었다. 토요일마다 달력을 보며 오늘이 가는 토요일인지 노는 토요일인지 확인하는 게 일상이었다. ‘갈토’에는 학급 임원 부모님께서 사주신 ‘콜팝’을 먹었던 기억, 학교 마치고 다 함께 친구 생일파티에 갔던 기억이 난다. 다섯 번째 주 토요일이 최악이었다. 다음 주 토요일까지 두 주 연속으로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영어를 카세트테이프와 책으로 배웠다. 책은 지금까지 그대로지만, 카세트테이프는 CD가 됐고, 마침내 태블릿 PC가 됐다. 되감기와 빨리 감기 버튼을 너무 많이 눌러 고장 난 녹음기도 여러 개였다. 녹음테이프가 늘어나 녹음기에 걸리면 테이프를 빼고 연필을 구멍에 끼워 열심히 돌렸던 기억이 난다. 되감기와 빨리 감기로 다시 들고

78내림돌 | 김성민 기자 | 2019-02-11 23:56

풀 향기가 좋다고들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니다.어릴 적 숲에만 들어서면 코를 찌르는 풀 향은 울렁거렸고, 그 향기롭다는 장미 향은 숨이 막혔다. 피톤치드가 나온다는 편백 베개의 향은 기침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이걸 향기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대체 무엇이, 어디가 좋은 것일까.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풀 향기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이다. 잔디 깎기가 한창인 가을날 폭풍의 언덕을 가로질러 봤는가? 냄새가 지독하다. 잔디가 베어지며 수액이 흘러나온 탓이다. 끔찍했다. 발밑의 잔디들은 처참하게 목이 베어진 채 꼿꼿이 서 있었고, 베어진 머리는 그 옆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고흐의 말이 떠올랐다. “난 밀밭에서 죽음을 봤어. 그들이 베어내는 것이 인류라면 어떨까” 보이지 않는 피로 얼룩진 폭풍의 언덕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 향 어디서 많이 맡았는데. 풀 향이다. 그제야 풀 향기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건 죽음의 향이다. 우리가 좋다며 산길로 뛰어 들어갈 때 발밑의 이름 모를 풀과 곤충들이 내지르는 하나의 비명이다. 나무들이 눈물 대신 수액을 흘리며 부르는 장송곡이다. 꺾인 꽃다발의 향기가

78내림돌 | 권재영 기자 | 2019-01-05 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