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중 각성과 의식 연구
수술 중 각성과 의식 연구
  • 김승환 교수/ 물리
  • 승인 2017.11.0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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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18,000년 전 동굴벽화. “The mind may fly while the body is inert.”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어디일까? 의식과 무의식의 수준을 어떻게 숫자로 정량화할 수 있을까? 이 오랜 질문의 답에 ‘물리학’이 도전하고 있다. 마취되거나 깰 때 의식과 무의식 간 나들목의 경계와 깊이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수술 중 각성(intraoperative awareness)과 같은 마취로 인한 의료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포스텍 물리학과의 필자와 정우성 교수 연구팀은 서울아산병원 노규정 교수팀과의 공동연구에서 다채널 뇌파의 상호작용 분석을 통해 마취 중 의식 소실과 회복의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을 정량적으로 밝혀냈다. 특히 전신마취 환자 뇌파의 다양한 리듬의 시간적 변화를 분석해 마취에서 회복되는 과정의 의식 깊이와 수준을 수치화하는 데 성공해, 더욱 정확한 모니터와 대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8,000년 전 동굴 벽화에 보면 꿈을 꾸는 사람과 꿈이 그려져 있다(그림 1). 몸과 마음의 관계는 우리 인간이 오랫동안 탐구해온 대상이다. 수면과 꿈은 몸과 마음이 대우 다르며, “우리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마음은 새처럼 기억과 상상의 먼 영역을 방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이 마음을 가진 나는 무엇인가? 내가 잠을 자거나, 꿈을 꾸거나, 마취하게 되면 몸과 마음은 어떤 상태로 가게 될까? 17세기 데카르트는 “의식은 정상 물리 법칙의 영역을 넘어서는 비물질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뇌와 같은 기계가 어떻게 인간을 정교한 언어의 표현과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한 반추를 가능하게 하는가”하는 것은 그가 넘어설 수 없었던 도전이었다. 
이 의식의 이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뇌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최근 뇌과학의 혁명적 진보로 “뇌 연구의 마지막 문제”로 여겨지던 의식의 과학적 연구도 1980년대 말 이후 깨어났다. 현재 의식연구는 물리학, 철학, 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인공지능(AI) 등을 포괄하는 대표적 학제 간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이언스지가 125주년을 맞아 발간한 특별호에서 선정한 Top 25 질문 중 하나가 “What is the biological basis of consciousness”이었다. 또한 의식의 문제는 20세기를 마무리하며 영국의 물리학회 IOP가 선정한 “10대 미해결 물리학 과제”에 포함됐다.
의식이란 말은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사실 매우 많고 복잡한 정신 현상을 다 포괄하고 있다. 뇌가 어떻게 관점, “자아”라고 하는, 특정한 시점으로 주변 환경을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가 모르는 채 뇌에서는 매 순간 치열한 경쟁이 일어난다. 수많은 잠재적 인지 활동 조각 중 하나만이 우리 의식의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위대한 심리학자 윌리암 제임스에 의하면 “의식은 바다에 떠 있는 섬과도 같은 존재로, 수면 위에서 떨어져 있지만, 깊은 곳에서 연결되어 있다.”
수면, 꿈, 마취 등 건강한 사람도 의식을 잃거나 회복하는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의식의 경험은 감각의 인식뿐 아니라 감정, 의지까지 복합된, 그래서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따라서 현상학적이지만, 반복 가능 하고 안정적인 “의식의 징표”를 찾아 이를 어떻게 객관화된 측정으로 과학의 일원으로 편입하는가가 핵심 이슈 중 하나이다. 이를 위해 정신의 상태를 조절하고, 뇌 상태를 세심하게 기록하고, 환자의 주관적인 부분도 분석하는 과학적 방법론과 의학의 협업이 필요하다. 포스텍 물리학과 연구팀과 아산병원의 공동연구에서는 이러한 측면에서 전신마취를 한 환자의 뇌 활동을 체계적으로 측정, 분석해 무의식과 의식 간 전이 현상을 정량적 지표화에 성공했다.

▲<그림2> 전신마취 중 뇌파측정 및 마취심도진단장비개발 (PLE)
영화 “Awake”는 한 남자가 수술 중 각성을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어느 순간 마취제가 작동 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는 깨어있지만, 몸은 얼어붙은 상태라서 지금 일어나는 일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매년 4천만 명의 마취환자 중 0.1~0.2%가 수술 중 각성을 경험하며, 트라우마가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환자의 의식을 직접 점검해볼 수도 없고, 환자 나이, 심장 상태, 제왕절개 등 요인으로 수술 중 각성을 완전히 예방하기 어렵다.
마취는 과학자들이 의식을 연구해야만 하는 좋은 사례이다. 앞서 수술 중 각성처럼 신체적 무반응이 무의식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의식이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하며, 어떻게 측정하고 정량화하느냐’는 것은 임상학적으로나 신경과학적으로 중차대한 과제이다. 하지만 의식을 직접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마취의사들은 뇌파, 물리적 반응 등 의식의 프록시를 모니터 해왔다. 최근 과학자들은 이를 넘어 “신경상관자(Neur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 NCC)”를 연구하고자 한다. 특히 의식에서 무의식 상태로 전이할 때 뇌 기능의 변화를 정량적으로 모니터 하는 데 주목하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들은 의식에 있어 정보의 합성 및 통합 패러다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에델만과 토노니는 뇌에서 기능적으로 특화된 모듈들의 정보 통합이 의식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며, 그 정보 통합 역량을 모델화, 정량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연구팀은 이러한 관점에서 복잡계 뇌의 엄청난 연결 네트워크 위에서 구성 노드 간 상호 정보 소통과 통합을 모형화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물리학의 엔트로피(무질서도) 개념을 도입해 뇌파 채널 간 위상 관계 변화의 다양성을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뇌파는 두피 표면에서 흔히 측정되는 복잡한 리듬이 혼재된 전기 신호이다. 보통 두피에 위치한 다수 센서에 해당하는 채널을 통해 다채널 뇌파 신호를 측정해 다양한 수치적 분석을 하게 된다. 위상지연 엔트로피 PLE(Phase Lag Entropy)는 두 개의 채널 신호의 리듬 간에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는 위상 차이를 계산해 이런 위상 관계의 시간적 변화 패턴의 다양성을 엔트로피로써 지표화한다. 이 엔트로피가 높으면 다양성이 커지며 엔트로피가 낮으면 다양성이 낮다.
 지난달 뇌과학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휴먼브레인매핑’에 게재된 연구는 96명의 환자에게 마취제를 이용한 임상 실험을 한 결과, 마취 후에 환자의 뇌파가 엔트로피 지표에 맞게 현격히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다른 투약 실험에서도 엔트로피 지표와 의식 수준이 밀접하게 상호 연관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에 기초해 위상지연 엔트로피(PLE) 지표를 활용한 마취 심도 진단 장비를 서울아산병원 및 국내 기업과 공동으로 개발하게 된 것이다(그림 2).
새로 개발된 장비는 뇌 연구의 기존 방법론에서 더 나아가 마취 심도까지 연결해 기존 지표보다 더 정확하게 마취 후 의식 소실 과정을 정량화해 보여 준다. 특히 기초연구로부터 시작해 응용개발 및 임상까지 우리 고유의 기술에 기초한 국산 장비를 개발한 것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의식의 문제는 매우 광범위하고 도전적이다. 몸과 마음이 각각 깨어있지 못하는 경우 긴장증, 몽유병, 식물인간, 혼수상태 등 다양한 병적 상태에 놓일 수 있다. 또한, 딥러닝 등 약한 인공지능을 넘어 로봇과 컴퓨터의 인공 의식에 대한 연구도 모색되고 있다. 수면, 꿈, 마취 등 의식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 차세대 과학자들이 의식의 신비에 한걸음 더 다가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