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한 덩이
빵 한 덩이
  • 강한솔 / 생명 15
  • 승인 2017.11.0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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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이면, 누구나 한 번쯤 방학 계획을 세워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흰 도화지에 컴퍼스로 큼직한, 둥근 원을 그리고 반듯한 자를 대어 절반을 꿈나라로 떼어먹고, 나머지를 조금 떼어 ‘컴퓨터 게임’, ‘영어학원’과 같은 녀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둥글둥글한 계획표는 꼭 빵 덩어리를 닮았었다. 나이를 더 먹고 나서는, 빵을 더 잘게 쪼개어 이름 모를 것들에게(아마도 수학, 영어 단어, 혹은 한자 암기 따위였을 것이다) 떼어 주었고, 부스러기만 어지럽게 쌓여 더 나눠줄 빵이 없어졌을 때는 내일의 빵을 그려서 나눠주곤 했다.
빵을 그리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시간을 잘게 쪼개는 데 익숙해졌다. 전공을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운동도 하고 게임도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무언가에게 주지 않는 일이 어색해졌다. 우연히 내 시간을 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손아귀에 남아 있던 시간을 아무렇게나 먹어 버리고는 ‘참 이상한 날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아무도 내 시간을 가져가지 않는 날이 늘었을 때는, 무엇이라도 좋으니 내 시간을 모조리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문득 네팔을 떠올렸고, 여행이라는 녀석에게 시간을 먹이기로 했다. 네팔에 도착해서 또다시 아무도 내 시간을 가져가지 않게 되었을 때는, 남들처럼 여행을 기록으로 남겨 보자고 생각하고는 사진을 찍는 데 모든 시간을 가져다 넣었다. 그런 여행이었다. 그날 해 질 무렵 호숫가에 앉아 잠깐 쉴 때도, 해가 조금 더 떨어지면 해넘이를 담으리라 생각했다. 촉촉한 호수의 공기에 발갛게 번진 하늘이 마을을 한가득 품고 있었고, 아주머니들이 하나, 둘 집으로 향하는 그런 저녁이었다. 곧이어 마을이 어둠에 잠기고, 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면, TV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나누었고, 어린아이들이 할아버지 앞에 줄지어 재롱을 부렸다. 숙소에 돌아갈 때도 잊은 채, 가만히 그 순간들을 눈에, 코에, 피부에 담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느긋하게 베어 물고, 살살 녹아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맛이 참 좋았다.
이제는 네팔에서 돌아온 지 8개월이 흘렀다. 이곳에선 배낭의 무게는 훨씬 줄어들었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기도 그만두었지만, 생각은 더 조심스러워졌고, 해넘이를 배웅하던 시선은 다음 시험을 걱정하며 활자 위 발걸음을 재촉하게 됐다. 불확실한 미래는 더 두렵고, 각자의 길을 걸어나가는 친구들의 멋진 모습을 볼 때면 한없이 기쁜 마음 한편에 초조함이 자리할 때도 있다. 많은 것들이 그대로지만, 또 조금 달라졌다. 공강 시간에 벤치에 앉아, 바람이 그려놓고 간 하늘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됐고, 창문 너머의 사각거리는 나무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직 만나지 못한 내 몫의 길을 느긋하게 기다릴 줄도 알게 됐다. 오늘도 머릿속에 갓 구워진 빵 한 덩이를 가만히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