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KBS 노조 총파업 돌입, 공영방송 정상화 초석 될까
MBC, KBS 노조 총파업 돌입, 공영방송 정상화 초석 될까
  • 김건창 기자
  • 승인 2017.10.11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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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전국을 뒤흔들었던 촛불 물결 속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언론사들이 있다. 광화문에 그 언론사들의 방송 차량 혹은 기자가 보이면 엄숙히 촛불을 들고 있던 시민들이 돌변해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 언론사들은 수십 년간 대한민국 국민의 안방을 책임져 온 MBC, KBS, 즉, 공영방송들이다. 압도적인 시청률로 여론을 주도하던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지난달 4일, MBC 제1노동조합(이하 노동조합은 ‘노조’로 표기)과 KBS 새 노조는 총파업을 시작했다. MBC는 2012년의 170일간에 걸친 장기 파업 이후 5년 만의 총파업이며, KBS도 비슷한 상황이다. MBC 노조는 블랙리스트 노조파괴 저지, 공정방송 단체협약 체결을, KBS 노조는 고대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퇴진 및 방송법 개정을 주요 안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MBC와 KBS의 경영진은 노조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며 노조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MBC 사 측에서는 이번 파업에 대해 ‘정치 권력과 노조의 방송 장악 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언론 적폐 청산이 '입맛에 맞는 사장'으로의 교체입니까?’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하며 물러서지 않을 것을 밝혔다. 또한, 공영방송 이사진 추천에 중립성 강화를 주요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 통과 역시 미지수인지라 당분간 공영방송 송출은 파행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행사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이다(출처 : 전국언론노동조합)

‘신뢰도 1위’MBC의 몰락
십여 년 전만 해도 MBC는 방송사 신뢰도 조사에서 타 방송사를 모두 제치고 50%대의 신뢰도를 나타내며 그야말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삼성과 정치 권력의 유착을 보여준) 삼성 X파일 △황우석 사태 △유력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의혹 등을 가장 먼저 보도했던 것은 MBC였다. 그러나 현재의 MBC는 과거의 영광을 잊은 듯 정권 비판에 소홀하고, 왜곡 보도를 하기도 하는 등 공정 보도를 해야 할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신뢰도는 수년째 한 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은 9년 전, 이명박 정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는 당시 PD수첩을 통해 한-미 FTA 체결로 국내에 수입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했고, 이는 국내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촛불 집회가 수차례 이어졌으며, 정부가 생후 30개월 미만의 소만 수입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MBC는 이 일로 말미암아 정부와 수차례 충돌했다. 정권의 압력에 △신경민 MBC 뉴스 데스크 앵커 △손석희 100분 토론 진행자 △엄기영 MBC 사장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2010년, MBC 이사회가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재철 씨를 사장으로 선임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정권 친화적인 사장은 문제 소지가 있는 ‘후플러스’와 ‘W’ 등의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정권에 비판적인 PD, 기자들을 한직으로 내쫓았다. 여기에 “김재철이가 큰집 가서 조인트 맞고 MBC 내 좌파들을 정리했다”라는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발언이 조명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MBC 노조는 파업에 돌입한다. 그러나 사 측은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며 10명에 해고, 216명에 대기 발령 및 감봉 이상의 징계를 내렸다.
2012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영진은 건재했으며, 여전히 보복성 인사 발령이 이뤄지고 있었다. 2011년 한-미 FTA 반대 시위에서 MBC 기자들이 쫓겨나는 상황이 벌어지자 MBC 기자들은 보도국 인사를 교체하라며 시위를 벌였고, 이는 총파업으로 확대됐다. 1월에 시작된 이 파업은 17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했지만, 역시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지는 않았고, 부당한 해고와 징계가 잇따랐다.
수뇌부에 우호적인 이른바 ‘시용(試用)’ 기자와 PD들로 빈자리를 채운 MBC는 2014년 세월호 사건 때 사상 최악의 오보를 내고 만다. 당시 MBC는 목포 MBC의 “전원 구조가 아닐 수 있다”라는 수차례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소식통을 그대로 인용해 ‘탑승자 전원 구조’라고 보도했고, 이는 달라진 MBC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총파업은 ‘MBC 블랙리스트’를 발단으로 시작됐다. 이전 정권에서 큰 문제가 됐던 문화계 등에서의 블랙리스트와 유사한 문건이 MBC 내부에서 작성된 것이다. 이 블랙리스트의 정확한 명칭은 ‘카메라 기자 성향 분석표’로, 카메라 기자들을 4개 등급으로 구분해 회사의 정책에 충성도를 갖고 있는가, 정치적 성향은 어떠한가를 분석한 자료였다. 사 측은 문건 공개 직후, “회사를 매도하려는 노조의 허무맹랑한 주장이다”라고 밝혔지만, 문건 작성 시기를 전후해 그 내용과 일치하는 인사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 의혹이 가중됐다. 결국,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드러난 지 한 달이 채 안 돼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했고,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MBC의 오보 장면이다(출처 : MBC)

정권의 언론 탄압인가
국경 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억압 수치는 △참여 정부 시기 평균 9.54점으로 평균 40.2위 △이명박 정부 시기 평균 12.67점으로 평균 50.5위 △박근혜 정부 시기 평균 26.32점으로 평균 59.25위로 평가됐으며, 심지어 작년에는 세계 70위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점수가 높을수록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 수치상으로도 10여 년 만에 언론 자유도가 급감한 것이다. 많은 이들은 이를 명백한 정권의 언론탄압으로 여긴다.
MBC 블랙리스트 문건이 공개된 지 한 달여 후인 지난달 18일, 한겨레신문은 이명박 정권 당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2010년 3월에 작성한 ‘문화방송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과 ‘한국방송 조직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방안’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먼저 ‘문화방송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에는 △퇴출할 지방 문화방송 사장, 간부 리스트 작성 △일선 기자, PD에 대한 문책 인사 확대 △문제 프로그램 리스트 작성 및 PD, 작가, 출연자 교체 △파업 업무방해 △노조 수익사업 차단 등 인적 쇄신과 편파 프로그램 퇴출 및 노조 파괴 공작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한국방송 조직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방안’은 △좌 편향 △무소신 △비리 연루 간부 퇴출을 골자로 했다. 국가기관이 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지시들이 자행된 것이다. MBC 블랙리스트와 정권의 뚜렷한 연계점은 찾을 수 없었지만, 이번 문건의 공개를 통해 공영 방송의 혼란이 정권과 관련 있었고, 대부분 정권의 의도대로 관철됐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동안 짐작만 했을 뿐이었던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가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이는 헌법 제21조 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에 철저히 위배되는 내용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공정방송으로의 복귀는...
최근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각각 MBC, KBS의 이니셜을 이용한 언어유희)) 행사가 매주 열리고 있다. 이 행사는‘KBS·MBC 정상화 시민 행동’으로서, ‘전국의 시민들과 함께 KBS·MBC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널리 알리고 두 공영방송을 정상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민 행동’이라는 취지를 갖고 진행되는 행사이다. 본지 기자는 광화문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 직접 참여한 후 인터뷰를 진행했다.
직장을 다닌다는 이은주 씨(47)는 “지난 9년 동안 KBS와 MBC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세월호 사건 이후 공중파 채널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KBS와 MBC의 보도는 너무 차이가 났다”라며, “사람들에게 지금 파업이나 돌마고 등의 행사가 회자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허유신 홍보국장은 “이명박 정권 이후 공영 방송 종사자들의 제작 자율성이 훼손됐고, 독립성이 무너졌다. 우리가 소신있게 저널리즘에 입각해서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라며, “파업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의 MBC처럼 정권에 대해 가감 없이 비판할 수 있게 되면 지금이라도 파업을 접을 수 있다. 경영진 퇴진은 궁극적 목표를 위한 단지 수단일 뿐 경영진 퇴진만이 목적이 아니다. 또한, 사 측에서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적반하장이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언론탄압과 언론장악을 주제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에서의 최승호 PD는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해요”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어둠 속에서 살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는 국민 주권을 확립하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 견제를 담당하는 주요 주체는 언론이다. 언론이 무너져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은 국민이 눈과 귀를 잃는 것이며, 이것은 곧 주권의 상실을 뜻한다.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는 부패한 군부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정확한 보도를 내보낸 언론이었다.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다시금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