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인재를 찾자, 눈먼(Blind) 채용
눈 가리고 인재를 찾자, 눈먼(Blind) 채용
  • 백승헌 기자
  • 승인 2017.10.1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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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은 ‘보지 못한다’는 뜻의 영어 Blind와 채용(採用)의 합성어로, 이력서에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키, 용모)과 같은 차별적 요인을 기재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블라인드 채용의 목적은 지원자들에게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사전에 알리고, 직무와 관련 있는 △교육 △훈련 △자격 △경험을 중심으로, 똑같은 조건에서 오로지 실력만으로 경쟁하게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하반기부터 공무원, 공공부문에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채용 분야가 특별한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 한, 관련 내용은 기재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덧붙여서,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민간 부문에도 블라인드 채용을 권유한다고 밝혔다.

블라인드 채용 추진 경과와 민간 부문 적용
블라인드 채용은 2004년 근로복지공단, 예금보험공사 등 9개의 공공기관이 직원 채용에 나이 및 학력 제한을 폐지한 것이 그 시작이다. 2005년 중앙 공무원 시험에서도 응시원서에 학력 란이 폐지되고 블라인드 면접이 도입됐으며, 서류전형 없이 모든 지원자가 필기로 응시하면서 블라인드 채용이 일부 적용됐다. 2007년 공공기관 전형 기준 개선을 추진하면서 △성별 △신체조건 △학력 등에 대한 불합리한 제한이 금지됐다. 2015년 공공기관이 능력 중심 채용을 도입하면서 직무를 분석하고 능력을 평가해 채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6월 22일 문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면서 블라인드 채용이 이슈화됐다.
그 결과, 2017년 9월 20일을 기준으로 많은 공기업과 일부 민간 기업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다. 예를 들면 ㈜카카오는 실무테스트 방식의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고, CJ는 △학교 △학점 △영어점수를 없앤 ‘리스펙트 전형’을 진행한다. 이처럼 공공 기관에서 먼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고, 점점 민간 기업들도 실시하는 추세이다.

블라인드 채용에 관한 찬반 논란
차별에 불만을 느끼는 이들의 목소리가 블라인드 채용을 이끌었지만, 일부 시민들의 불만이 가중되는 등, 블라인드 채용은 현재 수많은 찬반 논란을 낳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학력과 출신지의 제한에서 벗어나 똑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다며, 정책의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올 7월에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취업 준비생(이하 취준생) 9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82.2%의 취준생이 블라인드 채용에 찬성했고, 48.4%가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된다면 자신에게 유리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찬성자들은 ‘불필요한 개인 신상정보처럼 기존 이력서 항목에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해서’, ‘스펙이 곧 현업에서의 실무 역량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라는 등의 블라인드 채용에 찬성한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11%의 취준생은 자신에게 불리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블라인드 채용 도입으로 인해 출신 학교, 지원자의 학창시절 활동이나 구직자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이 무시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단편적인 기준으로만 인재가 선발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한 대학생은 “남들보다 노력해서 대학에 왔는데, 대학 이름을 가리고 경쟁하는 것은 부당하다. 출신 대학도 노력의 척도 아닌가?”라고 말했고, 한 민간 기업 인사 담당자는 “학력, 전공은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라며 블라인드 채용을 반대했다.

우리대학 학생들이 생각하는 블라인드 채용
블라인드 채용에 관해 찬반 논란이 심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대학 학생들은 블라인드 채용 시행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에 포항공대신문은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91명의 학생이 응답했다.
우선, ‘학사 졸업 후 취업에 관해 관심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33명(36.3%)이 취업을 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16명(17.6%)이 취업을 꼭 할 것이며, 36명(39.6%)이 잘은 모르지만 취업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취업을 생각해본 사람이 절반은 넘는 것이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에 찬성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39명(42.9%)이 블라인드 채용에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30명(33%)은 공기업, 공무원 채용에 적용되는 것만 찬성했다. 전면적인 도입 찬성은 15명(16.5%)인 것에 비해 반대 여론이 상당히 우세한 것이다. 이외에도, 채용 단계마다 다른 부분적인 블라인드 채용 도입, 기관 및 기업의 자율성 보장 등의 의견이 제시됐다. 블라인드 채용제가 본인에게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51명(56%)의 응답자들이 손해라고 응답했다. 26명(28.6%)은 달라질 것이 없다고 응답했고, 오직 7명(7.7%)의 응답자만 유리해진다고 판단했다.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의 우리대학 학부생들은 블라인드 채용에 동의하지 않고 있고, 적은 인원만이 블라인드 채용이 본인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함을 알 수 있었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심사라는 블라인드 채용의 목적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가리면서 학점은 가리지 않는 등, 블라인드 채용 시스템의 불완전함은 또 하나의 역차별이 되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공정한 심사를 위해 지원자들의 정보를 무작정 가린다는 방침을 내세우기보다는, 필요한 정보에는 눈을 더욱 열고 대다수가 수용할 만한 블라인드 채용의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