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우리 졸혼 했어요
나 혼자 산다, 우리 졸혼 했어요
  • 이승호 기자
  • 승인 2017.04.0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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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라’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하는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6년 이혼 10만 9,153건 중 황혼이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3만 2,626쌍으로 30%에 육박했다. 이혼 부부 3쌍 중 1쌍은 노부부란 뜻이다. 사실 황혼 이혼율은 2012년에 처음으로 신혼부부의 이혼을 뜻하는 초기 이혼율을 앞질러 현재까지 상승세를 보인다. 여기서 황혼이혼이란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한 부부들의 이혼을 일컫는 말로 주로 50대 이상의 노부부들 이혼이 여기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전체적 이혼율은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황혼 이혼율은 감소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황혼이혼의 증가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분석된다. 첫째, 이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변화이다.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남성 476명, 여성 576명)를 대상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사회발전연구소,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 공동연구진이 2016년에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않으면 이혼이 최선책’이란 문항에 반대한 사람은 34.7%로 10년 전인 2006년(47.6%)에 비해 12.9%가 줄었다. 이는 이혼한 남녀에 ‘이혼남’ 혹은 ‘이혼녀’라는 부정적인 딱지를 붙이던 때와 시대가 많이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둘째, 재산분할청구권의 도입이다. 1991년 재산분할청구권 도입 이전에는 전업주부들은 이혼 시 위자료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재산분할청구권 도입 후 전업주부들도 재산분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여성들의 이혼 후 경제적 부담이 한층 완화됐다. 실제로 2000년대에 들어 여성들이 재산권을 인정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셋째, 자녀들의 대학 입학과 결혼 이후에 부모로서 해야 할 역할의 소멸이다. 자녀 양육 때문에 결혼생활을 유지해오던 부부들이 양육 의무감에서 해방되어 뒤늦게 이혼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인구 고령화, 개인주의 사회 등이 황혼이혼 증가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황혼이혼의 증가 속에서 ‘졸혼’이라는 새로운 결혼 형태가 등장했다. 졸혼은 ‘결혼을 졸업하다’라는 뜻의 신조어로 2004년 일본에서 출간된 ‘졸혼을 권함’이란 책에서 처음 사용됐다. 졸혼한 부부는 법적 혼인관계를 유지하지만, 각자의 생활을 즐기며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 함께 생활한다. 부부가 같이 생활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최대한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을 존중하는 결혼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이혼 후 양육비 분담, 부작용이 걱정되는 노부부들이 이혼 대신 졸혼을 대안으로 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90년대부터 황혼이혼이 증가해 이미 중년 부부 사이에서 졸혼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브라운관 속 졸혼의 등장으로 최근에서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탤런트 백일섭 씨는 KBS 2TV 남자들의 주부생활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 2’에 출연하여 졸혼 사실을 밝혔다. 그는 방송에서 “아내와 만난 지 1년이 넘었다. 서로 정답게 같이 살면 좋지만 성격상 나는 그럴 수 없다.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졸혼 사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또한, 지난달 4일 방영을 시작한 KBS 2TV의 주말연속극 ‘아버지가 이상해’에도 졸혼을 요구하는 노년 가장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이 드라마는 첫 방송 시청률 21.1%(TNMS 제공)를 기록하며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색적 결혼문화인 졸혼에 대해 대중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혼남녀 548명을 대상으로 결혼정보서비스 ‘천만모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7%가 졸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혼 후 자신의 졸혼 의향에 대해서는 미혼 남성의 경우 54%, 미혼 여성의 경우 63%로 졸혼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졸혼 사유에 대해서는 ‘결혼생활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고 싶어서’가 57%, ‘배우자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가 22%로 개인의 행복과 삶을 중시하는 미혼남녀들의 가치관이 드러났다.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혼밥’, ‘혼술’과 같은 ‘혼자 하기’ 문화도 졸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연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도 좋지만, 노년기만큼은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헐거운 결합’을 추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 평균 수명 연장 등으로 미뤄보아 머지않아 졸혼은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결혼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하지만 졸혼은 결혼생활의 차선책이지 최선책이 아닐수도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추세에 휩쓸리기 보단 자신에게 맞는 신중한 노후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