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20대를 꿈꾸며
희망찬 20대를 꿈꾸며
  • 박지후 기자
  • 승인 2017.03.15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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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우리가 대학생이 되면 엄청난 양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그걸 감당하지 못 해 학자금 대출에 손을 뻗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학자금 대출은 대학교 졸업 이후부터 차근차근 갚아나가야 하지만, 취업난 때문에 취업을 못해 돈을 갚지 못하면 우리는 신용불량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오던 10살에게 이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뉴스를 볼 때도 여러 뉴스에서 취업난을 강조한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는 신용불량자’라는 타이틀만이 크게 와 닿았다.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며 초등학생이던 나는 중학생이 됐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선생님들께서 이끌어준 길을 따라 다녔고, 집에서는 부모님께서 가르쳐준 길로만 끌려 다니며 어른들에게 의존하며 살아왔다. 부모님과 선생님들께서 외부 대회를 추천해 주셨고, 더 나아가 과학고등학교 진학을 추천해 주셨다. 그분들께서 해주시는 대로 따라가기만 한다면 내 장래는 밝다는 생각도 하며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고등학교에서의 나는 의존적인 모습을 버려야 했다. 의존적이지 않았던, 각자의 길을 찾은 친구들은 각자 진로에 맞는 외부 대회를 찾아 나가곤 했다. 그렇지 않았던 나는 중학생 때처럼 어른들이 추천해주는 외부 대회에서 실적을 쌓으려 했지만, 선생님들께서는 알아서 대회를 찾아보라 하셨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탓에 부모님과 연락할 수 없었다. 결국, 길을 찾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신용불량자만큼 암담한 미래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빠진 채로 방황하다가 외부 대회를 나가지 못했고, 교내 수학 경시대회 단 하나의 수상 실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에서의 방황 덕분에 현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고, 그중 하나인 포항공대신문사에서의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만약 내가 길을 찾을 기회를 얻지 못해 고등학생이던 내내 의존적이었다면 지금 나는 수능을 잘 보는 법이라는 획일화된 길만 따라왔을 것이며, 어른들에게 의존하며 시키는 대로 문제만 풀어왔던 수동적인 20살일 것이다. 그 결과 알아서 미래를 찾아가는 다른 친구들을 보고 내 미래는 내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의존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을 것이다. 나는 대학생이 돼서야 방황했을 것이고, 길을 찾는 시간이 더 늦어진 나머지 지금 꿈꾸고 있는 밝은 미래와는 다른 미래를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길을 찾을 기회를 빨리 얻은 나와 달리, 사회는 대학 진학에 길을 찾는 기회를 미리 얻지 못해 힘들어하는 몇몇 20대들에게 불과 몇 년 전까지 획일화된 길을 강요했다. 현재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그들의 진로에 대한 방황에 위로의 말을 남기기는커녕 방황을 정당화한다. 방황하는 20대 청춘들은 그나마 찾은 길에서마저 사회로부터 열정페이를 강요받으며 그들의 일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열정페이를 강요받아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는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사회는 ‘요즘 젊은이들이 끈기가 없어’라는 말로 그들의 희망을 지워버린다.
여전히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해 아파하는 25세와, 청춘을 즐기면서 창창한 미래를 꿈꾸는 25세 중 모두가 꿈꾸는 25세는 후자일 것이다. 갓 20대에 접어든 나 그리고 아직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청춘들이 빨리 자신의 길을 찾아 희망찬 미래를 꿈꾸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