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꿈의 빛에 다가가다
르포 - 꿈의 빛에 다가가다
  • 김휘 기자
  • 승인 2017.03.0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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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바람을 맞으며, 본지 기자들은 화학관, 생명과학관을 지나 가속기연구소(PAL) 앞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직원 분이 운전하시는 중형차를 타고 얼마쯤 이동하자, 차에서 내리는 기자들을 맞이한 것은 옆으로 뉘어진 흰색 원통 모양의 4세대 가속기였다.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차들이 웅장한 가속기 내부의 열띤 작업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했다.
때는 2월 중순이었고, 4세대 가속기에서는 3월 말 개시할 사용자 실험 서비스를 위해 유지 및 보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기자들은 운 좋게 내부 터널을 둘러볼 수 있었다. 4세대 가속기를 가동할 때는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전자기파가 방출되기 때문에 터널과 바깥은 높이 3m, 두께가 1.5m나 되는 거대한 철문으로 분리된다.
가속기연구소 김창범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기자들은 4세대 가속기의 시작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전자총 앞으로 다가갔다. 길이 약 2m의 총신을 둘러싼 수많은 기계장치는 중환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링거 줄을 연상케 했다. 가까이에서는 연구원들과 수리업체 직원들이 힘을 합쳐 장비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발사된 전자는 길게 뻗어 있는 가속관을 통해 가속되는데, 2극 자석을 통해 궤도가 굽혀지고, 2극 자석 2개가 모인 설치한 4극 자석을 통해 집속된다.
김 박사와의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이동하는 길에서는 가속장치 운전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이곳은 전자의 전하량, 방사광 에너지 등 전체 운행 점검이 이루어지는, 4세대 가속기의 명실상부한 관제탑이다. 수리 기간이라 아무도 없었음에도, 자리 하나당 커다란 모니터가 5개씩 설치돼 있어 긴장감이 돌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터널로 들어가, 전자총에서부터 반대편 끝인 빔라인 및 실험장치 부분으로 걷기 시작했다. 전체 거리의 4분의 1 정도에 도달하자 벽에 붙은 히터가 눈에 띄었다. 히터는 냉각수를 사용해 가속관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조금 더 가자 가속관이 실험적 쓰임새에 따라 두 갈래로 갈라졌다. 각각은 연 X선(soft X-ray) 라인과 경 X선(hard X-ray) 라인으로 불린다.
전자 가속 및 증폭을 위해 터널 바깥에 설치된 모듈레이터(modulator)와 클라이스트론(klystron) 51세트는 각각 터널 내부로 이어져 180개에 달하는 가속관을 이룬다. 터널 안은 선형가속기 부분 710m를 포함해 총 길이가 1km가 넘지만, 완전한 직선형 구조인 데다 가속관 유닛들이 비슷비슷하게 체인처럼 연결되어 있어, 거리감이 느껴지기보다는 엘리베이터의 무한거울 같았다. 선형가속기 끝부분에는 일반적인 물통 모양의 정수 측량 장치(hydrostatic leveling system)가 있어, 가속기 각 부분의 지반 거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정수 측량 장치를 통해, 전자를 가속할 때 수평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높이도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끝없는 설비를 보면서, 재작년에 4세대 가속기가 완공되고 나서 작년 내내 장비를 들여놓았다는 설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선형가속기의 임무가 오로지 전자를 만들고 가속하는 것이라면, 방사광을 만드는 작업은 삽입장치 중 언듈레이터(undulator) 구간에서 이루어진다. 언듈레이터의 매우 좁은 틈 사이로 가속된 전자가 지나가면, 자기력에 의해 진행 방향이 좌우로 계속해서 바뀌고 이때 강력한 방사광이 방출된다. 빔라인 도착 직전에는 관이 두 개로 나뉘어, 방사광은 실험에 이용하기 위해 계속 이어지도록 하고 전자빔은 빔라인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방사광과 분리한다.
빔라인 및 실험장치 부분에서는 6개의 다리를 가진 시료 거치 도구, 헥사팟(hexapod)과 커다란 로봇 팔이 높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포커싱 미러(focusing mirror)을 이용해서 빔라인으로 이어진 방사광을 최대한 집적시키고, 그 위에 시료를 놓아 강한 레이저를 내리쬔다. 채 몇 초가 되지 않는 전자의 대장정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다.
독자들도 가속기 관련 분야 연구자가 아니라고 4세대 가속기를 곁눈질하지만 말고, 한번 방문하는 것이 어떤가. 국내 최신 설계 및 과학기술의 집합체라는 사실과 별개로, ‘4세대 가속기는 우리대학과 포항의 자랑거리’라는 말이 막연한 찬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격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