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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의 21호
[381호] 2017년 02월 10일 (금) 박정민 / 생명 14 .
23호지만 하얗게 나와서 거부감 없이 많이들 쓰세요, 하고 점원은 손등에 파운데이션을 발라 줬다. 하얀 23호라니. 듣고 어이가 없었다. 하얀 까만색이 나왔어요, 하얀색이랑 별로 차이도 안 나요. 그러려면 하얀색을 사지. 이 무슨 역설인지.
대한민국에 23호가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여성들이 갈수록 하얘지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국 평균이 21호라지만, 엄밀히 말해 대한민국에 진정한 21호는 몇 없다. 하지만 당신은 아마 23호를 고르려다 망설일 것이다. 에이, 난 그 정도까진 아니지. 나보다 까만 사람도 있는데 뭐. 아마 당신은 타협할 것이다, ‘하얀 23호’로. 은연중에 당신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세우고 거기에서 스스로가 그렇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합리화한다. 나는 그렇게 뚱뚱하지 않아, 나는 그렇게 까맣지 않아. 봐봐, 난 55지만 작은 55를 입잖아!
마이크 제프리 아베크롬비 CEO는 “아베크롬비는 ‘매력적인 미국 젊은이’를 지향한다. 우리 제품에 맞지 않는다면, 그들은 매력적인 미국 젊은이가 아닌 것이다”라고 말하며, XL이상의 여성 고객이 매장에 들어오면 물을 흐리므로 그들에게 맞는 사이즈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말해 질타를 받았다.
예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옷? 그 옷이 맞는 이가 날씬해서 예뻐 보이는 것이지 제품 자체가 예쁜 것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제품을 써도 예쁘다. 원래 예쁘니까! 일반인을 모델로 쓰는 전략이라고 봐도 좋겠다. 날씬한 사람이 입은 옷을 보고 사람들은 옷이 예쁘다고 생각할 거고, 그러면 브랜드 가치는 높아진다. 옷을 입기 때문에 매력적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사람이 입어서 옷이 매력적이게 보이는 것이다! 굉장히 기괴한 마케팅이다.
소비자 스스로가 점점 그런 것들을 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고 제작회사의 농간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화장품은 더 하얘지고 옷은 더 작아진다. 백인, 황인, 흑인, 모두에게 골고루 맞는 다양한 색상으로 유명한 로레알 트루매치 파운데이션은 국내에 도입되자마자 이름만 21호인 새하얀 ‘백인용 파데’만 들어오는 기염을 토했다. 프리사이즈는 44, 작은 55나 입는 것이고 L은 나오지도 않거나 55사이즈다. 66사이즈와 23호는 66전문 쇼핑몰이나 해외 직구에나 존재하는, 일반 몰에서는 맞는 상품을 찾을 수 없는 ‘비정상인’이 되어간다.
놀랍게도 이런 시대상에서도 세상은 분명 바뀌고 있다. 고전의 끝에 있는 디즈니 공주만화에서조차, 벨(미녀와 야수) 역의 엠마 왓슨은 코르셋을 벗어던졌고 까만 얼굴이 매력적인 모아나는 떳떳하게 스스로 탐험을 하고 다닌다. 심지어 바비인형까지도 까맣고 현실적인 몸매를 가진 바비가 나와서 하얗고 날씬한 것만이 예쁜 것이 아니라고 외쳐대는 판국에 나는 내 돈으로 내 화장품을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 마치 그리스 신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누워있기라도 한 기분이다. 그는 행인을 자신의 침대에 뉘어 놓고 다리가 짧으면 늘려 죽이고, 다리가 길면 딱 맞도록 적당한 길이로 잘라 죽였다. 그는 모두를 자신의 침대에 눕혀 놓고 기준에 맞지 않는 모든 이를 도태시키고 적당히 예쁜 순혈만을 남길 것이다. 나는 이 모든 획일화와 ‘비정상’에 대한 혐오가 경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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