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교양: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미술관 하이라이트: 갤러리 토크>
현대적 교양: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미술관 하이라이트: 갤러리 토크>
  • 우정아 / 인문 교수
  • 승인 2017.01.01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드레아 프레이저(Andrea Fraser, 1965년생)는 미국의 퍼포먼스 아티스트다. 그는 1989년에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미술관 하이라이트: 갤러리 토크(Museum Highlights: A Gallery Talk)>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프레이저는 ‘제인 캐슬턴(Jane Castleton)’이라는 가명으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미술관 직원, 즉 도슨트 역할을 연기했다. 흰 셔츠와 회색 정장 차림에,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묶은 작가의 차림새는 미술관의 이곳저곳으로 관람객들을 유도하며 미술사의 걸작들뿐 아니라 유서 깊은 건물과 컬렉션의 역사를 아울러 설명하는 전형적인 도슨트의 모습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캐슬턴’은 작품이 아니라, 화장실, 식당, 표시판, 기념품 매장 등에 대해 진지하고도 정열적으로, 유려한 미사여구와 과장된 제스처를 뒤섞어 설명했다.
문 위의 ‘출구(Exit)’ 표시에 대해서는, “빈틈없는 그림에, 색채와 질감은 섬세합니다. 이 그림은 눈부신 형태의 눈부신 사례입니다”라고 설명하고, 화장실 앞의 음수대(飮水臺)를 보며, “정말 멋진 음수대가 아닌가요! 놀라운 경제성과 기념비성을 갖춘 작품입니다. 이 형태의 엄격하고도 대단히 세련된 제작기술과 과감한 대조를 이루지요!”라고 하고 지나가는 식이다. 그녀가 사용하는 온갖 형용사들은 흔히 ‘걸작’을 묘사할 때 쓰는 현학적이고도 고상한 단어들이다. 실제로 ‘캐슬턴’의 대사는 작가가 참조한 각종 미술관 및 미술사 관련 전문 서적과 보고서에서 인용한 문장들의 짜깁기다.
‘캐슬턴’은 기념품 가게를 가리키며, “75만 불이면 여러분은 이 매장의 이름을 새로 지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75만 불이 있다면, 저는 이 가게 이름을 ‘안드레아’라고 짓고 싶네요”라고 한다. 75만 불은 2016년 현재 환율로 약 8억 5천만 원이지만, 1989년의 값어치는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나아가 그녀는 “대중들, 그러니까 옷과 그릇, 값싼 보석을 사는 그들은 다른 문명과 다른 세기의 걸작들을 봄으로써 취향의 수준을 끌려 올려줄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역설한다. 이 대사는 1922년에 발행된 「새로운 미술관과 필라델피아에 대한 봉사」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대상은 그리 고귀하지 않은 미술관의 일반 시설물이었으나, 그 우스꽝스러운 설명에서는 미술관이 수호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적 질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비롯하여 많은 미국의 미술관들은 19세기 말, 빈민 구제 정책의 변화와 함께 건립되기 시작했다. 그즈음 금융 및 산업계에서는 빈민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면, 노동 혹은 궁핍이라는 양자의 선택지밖에 없는 그들에게 제3의 대안을 마련해줄 뿐이라며 반발했다. 따라서 산업계는 직접적 원조 대신에 ‘훈련과 교육’을 제공하여, 가난한 자들이 어떤 조건에서도 일하도록, ‘인격’을 만들어내고, ‘취향’을 끌어올릴 것을 제안했다. 그것이 바로 미술관의 건립 목적이었다. 프레이저가 연기하는 ‘캐슬턴’은 바로 그 목소리를 페러디하여 미술관이 이처럼 사실은 자본주의의 미덕을 선전하고, 물질적 가치를 ‘취향’ 혹은 ‘수준’이라는 미명하에 널리 전파하는 역할을 갖고 탄생했음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계속해서 연설한다: “우리 미술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합시다. 왜냐하면, 최종적으로 미술관의 목적은 미술에 대한 감식안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감식안을 키우는 것이거든요. 가치에 대한 안목은 우리로 하여금 가치와 무가치, 진실과 거짓, 미와 추, 세련된 것과 상스러운 것, 진심과 위선, 고귀한 것과 저급한 것, 그리고 옷차림과 행동에 있어서 품위 있는 것과 외설적인 것, 그리고 영원한 가치와 일시적인 것들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는 ‘캐슬턴’이 1928년 필라델피아 교육청에서 발표한 공공 교육에 대한 이사회 보고서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이처럼 미술관, 나아가 미술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부르주아의 가치에 순응하는 ‘교양인’을 교육하고자 하며, 따라서 미술관이 가르치는 ‘교양’이란 기존 사회가 설정한 가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프레이저가 강조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교양’은 그것을 비판적으로 사고하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와 능력이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자신과 음수대를 구분하는 능력, 다른 것과 나은 것을 구분하는 능력, 우리의 권리와 우리의 요구를 구분하는 능력, 우리에게 선한 것과 사회에 선한 것을 구분하는 능력.”
사회학자 피에르 브루디외는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작업에 대해 “사회적 현실의 숨겨진 진실이 스스로 드러나게 만드는 ‘시한폭탄’처럼 작동한다”고 했다. 이처럼 현대 미술은 ‘교양’이라는 세련된 베일이 가리고 있는 사회적 현실을 벗겨내는 시한폭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