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합시다!
질문을 합시다!
  • 이민경 기자
  • 승인 2016.11.0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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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법 제28조에는 대학이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곳이라 정의한다. 학생 스스로 배움을 목적으로 하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야 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렇기에 학생은 단순히 수업을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
교육을 위해서는 선생이, 대학에서는 교수가 필요하고, 학생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이다. 선생은 학생의 배움을 도와주는 서포터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선생 중심이며, 대학 입시에서 주요하게 생각되는 지식을 비판 없이 수용하도록 학생을 훈련한다. 학생은 선생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고 외우는 데 급급하다.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고등학생 생활을 마치고 대학생이 되면, 대학 수업에서도 여전히 수업 내용을 받아 적고 외운다. 수업시간은 교수의 말을 ‘경청’하는 학생으로 가득하다. 간혹 질문하는 학생이 있지만 늘 그 학생만 말한다. 다른 학생은 질문하지 않고 수업만 듣고도 온전히 내용을 이해한 것일까? 아니라면 왜 입을 열지 않는 것일까?
앞서 말했던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수용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질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분명히 수업을 들으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단지 궁금증이 생기더라도 말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주위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질문하려면 우선 정적을 끊어야 하고, 말을 하면 교실 내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이는 매우 부담스러운 경험이다. 질문하려면 걱정이 앞선다는 학생도 많다. 남들이 보기엔 생뚱맞은 질문일 수 있고,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 같고, 수업과 관련 없는 질문일 것 같아 눈치 보이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질문하는 학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문제다. 본인은 이해한 내용인데 누군가 이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고 교수가 답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혼자서 공부해서 알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수업시간에 해서 진도를 못 나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질문 때문에 수업시간이 늘어나는 것과 수업의 흐름이 끊긴다는 이유로 질문자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질문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탐구하기 위한 원초적인 필연적 행위이다. 교수가 간혹 설명을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질문하면 교수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줘서 이해하기도 수월해진다. 본인이 안다고 생각한 내용을 다른 학생의 질문으로 새롭게 이해하는 경우도 있어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수업이 끝나고 개인적으로 질문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학생이 그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잃는 것이다. 본인은 이해했다고 다른 학생이 모두 이해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이기적이다. 지극히 사적인 질문이 아니라면 용기를 내어 수업 중에 질문하자. 두렵다면 우선 옆에 앉은 친구들에게 먼저 질문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함께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 친구도 질문에 흥미를 느낀다면 수업 내용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그 후 손을 들고 질문한다면 모두에게 의미 있는 수업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호기심을 자극해보면 재미있는 질문들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질문은 만드는 것에 멈춰서는 안 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으려는 시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업 내용에 대한 이해력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 질문하는 것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말로 전달할 필요는 없다.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충분히 자신만의 답을 끌어냈을 때 피드백을 받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하자. 수동적으로 알게 된 지식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한 지식이 오래 남는다. 질문은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