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과 내면의 접점, 그리고 새로운 매체의 유효성
사생활과 내면의 접점, 그리고 새로운 매체의 유효성
  • 백지혜 / 인문 대우교수
  • 승인 2016.11.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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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일상사를 관심 있게 주목한 필립 아리에스는 한 유리 세공업자가 쓴 회고록에서 “내가 글을 쓴 목적은 오직 나 자신의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며 나 자신을 회상해보기 위해서”라는 글을 발췌하고, 개인의 ‘취향’에 대한 인식이 증가된 사례를 수집하였다. 이것이 바로 필립 아리에스와 그의 동료들이 같이 쓴 책 『사생활의 역사』이다. 그는 유럽의 예술에서 반복된 자서전, 초상화, 편지, 고백록, 회상록을 주목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글, 자신을 위한 예술 작품이 증가된 원인이 개인의 자의식 발전과 관련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리에스가 책을 쓰기 위해 주목한 유럽의 16~18세기는 프랑스 대혁명과 연관된다. 마리앙트와네트를 향한 프랑스 시민의 불만, 공권력의 무기력함은 시민의 권리 주장을 통해 국가를 향한 새로운 이상향을 요청하였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파급력은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게끔, 그리고 개인의 일상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국민의 ‘주권’으로 받아들여졌다. 국가제도의 공고함을 강조하였던 사회 공동체에도 균열이 생겨났다. 공동체에서 빠져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프라이버시’는 개인의 일상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고픈 욕망으로 이어지는데, 유럽의 18세기에서 ‘편지’ 쓰기가 유행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생활과 내면의 접점은 실제 새로운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매체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사생활과 취미를 존중하는 것은 한 개인의 내면을 충실히 살펴볼 도구가 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생활에서 ‘사생활’이 가장 민감하게 반영된 영역은 무엇일까. 소설가 김연수는 「1990년대와 나 그리고 개인되기」라는 에세이에서 워크맨과 PC, 그리고 삐삐를 설명하고 이것이 바로 사생활과 내면이 반영된 ‘개인용 기기’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의 변화가 1990년대 개인주의를 이끈 첨병이라고 해석하였다. 김연수가 지지하듯 1990년대와 1980년대 문화는 상당히 다르다. 80년대 문화가 학생과 노동자의 연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투신하는 청년문화가 유효했다면 1990년대는 지극히 개인의 취향과 내면을 존중하면서 ‘나’에 대한 배려가 우선시된 시기이다.
 김연수는 아르바이트해서 번 첫 월급으로 ‘워크맨’을 샀다고 고백한다 . (워크맨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말하는 것으로 SONY 사의 고유 상표이기도 하다. 1979년에 처음 등장한 워크맨은 집 밖에서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전 세계인의 음악 감상 습관을 바꾸었다) 그에게 있어서 워크맨은 새로운 신세계로 묘사된다.

  이어폰 하나가 내 삶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적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그 공간은 필요에 따라서 내면으로도 취향으로도 불렸다. 이어폰으로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나는 언제라도 귀에 이어폰을 꽂는 일만으로도 집단의 줄 맞추기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 (「1990년대와 나 그리고 개인되기」중 일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혼자’ 들을 수 있다는 것. 이는 곧 개인의 ‘취향’과 내면의 사색이 ‘기계적’으로 공존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후 김연수는 개인용 컴퓨터(PC)로 ‘수많은 나만의 폴더’를 만들었고, 혼자 몰두하는 자기만의 시간을 통해 소설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지금은 사라진 삐삐 역시 “가족이나 친구와도 공유하지 않는 내면의 공간”을 만들어준 매체로 들었다.
 김연수의 글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개인용 기기의 등장은 물질문화사를 넘어 이것과 연관된 개인의 감수성까지도 설명한다. 시간과 공간의 구속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진 개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를 통해 성장한다.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고 은둔하면서 평온한 감정을 느끼는 자발적 유폐의 감정,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문화를 유지하는 힘 또한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제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단체와 집단의 획일화에서 벗어나거나 줄 맞추기에서 이탈한 개인은 처벌받기 일쑤였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내면의 발전을 도모하는 개인주의는 전체주의의 해결을 배제하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 미학과 철학의 질문 한가운데에는 항상 개인의 사생활과 취향에 대한 존중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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