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법, 그 이후
김영란 법, 그 이후
  • 명수한 기자
  • 승인 2016.10.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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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법의 개정 및 시행은 대부분의 경우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보조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휴대폰 시장에 영향을 주었던 단말기 유통법, 청소년들의 게임 접속 시간을 제한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게임 셧다운제 등이 좋은 예시이다. 올해 역시도 새로운 법의 시행으로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예상되는데, 주인공은 바로 김영란법이다.
김영란법의 정확한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며 2012년에 김영란 전 국민권익 위원장이 추진하면서 김영란법이라고 불리게 됐다. 최초로 제안된 이후 2013년 8월 정부 안의 국회 제출, 2015년 3월 국회 본회의 통과 및 제정 등의 과정을 거쳤으며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되게 됐다. 법안의 주요 골자는 공직자, 여러 재단의 이사진, 언론사나 기업의 임직원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100만 원 이상의 뇌물을 받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즉, 금품 수수나 부정 청탁이 이루어질 경우 강력히 처벌하여 이를 근절하겠다는 의도인데, 2011년 말에 발생했던 ‘벤츠 검사 사건’이 법안의 제정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한 변호사가 내연관계였던 검사에게 사건 청탁을 대가로 벤츠 자동차 등을 선물한 사건으로 두 당사자는 이를 사랑의 징표라고 주장했으나 대가성으로 준비한 선물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건에 해당하는 경우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의 부재로 법정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법체계에 대한 불신을 품게 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법으로서 김영란법이 등장하게 됐다.
법이 제안된 이후 4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법의 내용이 다소 변경되기도 했다. 2016년 9월 28일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 중심이었던 초기 법안의 범위가 확장돼 언론인과 사립 학교 재단 임직원 및 이사진 등을 포함하게 되었다. 상기한 직종의 종사자들은 이제 업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100만 원 이상의 뇌물을 받으면 처벌을 받게 된다. 다만 동창회나 향우회 등으로 지속적인 친분을 가졌던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공직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경우와 행사의 주최자가 상식적인 범위에서 지급하는 교통, 숙박, 식사비 등은 제외된다. 또한, 초기 김영란법의 핵심 취지로서 공직자가 자신의 자녀를 특채하는 등, 사익을 위해 지위를 남용하는 경우를 막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제외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의 경우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다시 공론화하겠다는 견해를 밝혀 추후 논의될 예정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직종 종사자들이 직무 관계자로부터 3만 원 이상의 식사 대접, 5만 원 이상의 선물, 10만 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받는 경우 과태료를 내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된다.
이처럼 식사와 선물을 포함한 접대와 청탁이 모두 제재 사유가 됨에 따라 기존 관행의 수정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그로 인해 김영란법의 시행이 일으킬 사회적, 경제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선 농수축산업계와 요식업계 측에서 단가가 비싼 메뉴나 제품의 판매가 위축되어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고, 그 외에도 법의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거나, 선물용으로 애용되던 고급 브랜드들이 타격을 입는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하지만 “3만 원 이하로 제품을 재구성하여 해결할 수 있다”, “더치페이 문화의 활성화를 통해 정해진 금액 내에서 충분히 소비생활이 가능하다”, “아직 구시대적 관행과 관습에 익숙하여 발생하는 시행착오일 뿐이다” 등의 반론 역시 나오고 있다.
대학 사회에서도 김영란법의 시행에 따라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졸업 전에 공공기관과 기업의 조기 취업생들이 취업계를 제출하면 수업시간에 불참하고도 교수로부터 학점을 인정받는 관행이 부정 청탁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지난달 26일 각 대학에 공문을 보내 조기 취업생들의 학점을 인정하는 취업 특례 규정을 만들도록 했다. 또한, 대학원 등에서 학생이 졸업논문 지도 후 식사와 후식을 합쳐 3만 원 이상의 음식을 제공했다면 김영란법의 ‘금품 수수 금지조항’에 저촉된다. 그 외에 대학생이 과목 담당 교수에게 학점을 올려달라고 청탁하는 경우 금품을 수반하지 않고 말로만 하더라도 불법이며 교수는 이를 바로 거절해야 한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모든 법안은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함께 내포하고 있고 김영란법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피로가 쌓여가는 지금, 이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김영란법은 큰 의미를 가진다. 반론에 대한 지속적인 보완을 통해 김영란법이 인간관계라는 미덕을 지키면서도 부정 청탁이라는 악을 거를 수 있는 법으로 남아 부정부패 척결의 신호탄이 되도록, 관련 부처와 관계자들은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