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변화, 품격과 함께 개성과 실속을 더해가며 전통을 지키자
추석의 변화, 품격과 함께 개성과 실속을 더해가며 전통을 지키자
  • 박지후 기자
  • 승인 2016.09.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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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는 추석 때 그해에 추수한 농작물을 요리해 먹고, 다양한 놀이를 하는 전통이 있었기에 늘 이 날처럼 풍족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실제로 추석이라 하면 많은 사람은 햇과일과 전 등 다양한 음식이 올라간 차례상을 상상하며 침을 삼킨다. 또,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여 온 가족이 모이는 시끌벅적한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정겨운 풍경들이 옛날이야기가 되어 간다. 추석 문화도 시대가 지남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추석이라는 명절은 본래 직접 농사를 지어 얻은 산물로 생활하던 농경 사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명절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1차 산업인 농업보다는 제조업, 서비스업 등과 같은 2차, 3차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다. 따라서 직접 농사를 짓기보다는 농작물을 구매하여 소비하는 현대인들은 추석 차례상에 필요한 햇과일과 햇곡식 등을 구매해 차례상을 차린다. 하지만 차례상을 차리는 데 필요한 농작물 구입 비용이 증가하고 있고, 햇과일과 햇곡식 등을 구매하더라도 명절 음식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노동 역시 필요하다. 따라서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차례상의 규모를 줄이거나 완제품 차례상을 구매해 차례를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지마켓에 따르면, 완제품 차례상의 매출이 지난해 추석 대비 51%, 올해 설 대비 13% 증가했으며, 특히 50대와 60대의 완제품 차례상 구매 비율이 각각 31%와 22%로 증가했다. 차례상을 차리는 게 익숙한 중년 세대에서도 상차림의 부담을 줄이고자 변화에 동참한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차례상의 변화와 함께 선물세트의 간소화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는 2가지가 꼽힌다. 첫째는 1인 가구의 증가이다. 1인 가구의 증가로, 업계에서는 1인 가구가 쓰기에는 부피가 크고 값이 비쌌던 선물세트 대신 포장을 줄이고 실속을 늘린 선물세트를 내놓았다. 또한, 이번 달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발효된다. 추석 연휴였던 지난 14일부터 16일은 김영란법 발효 전이지만 법 취지에 맞게 고가의 선물을 지양하고 5만 원 이하의 실속 있는 선물을 구매하는 분위기이다.
추석 전에 가족들이 모여 조상들의 묘를 관리하는 벌초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흔히 추석 몇 주 전에는 벌초를 위해 나선 차들로 고속도로가 정체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벌초하며 풀을 깎다가 주변의 벌집을 건드려 벌에 쏘이거나 산 근처의 뱀에게 물리는 등의 사고가 종종 발생하였다. 이러한 벌초의 불편함과 사고의 위험성은 벌초 대행업체가 성행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자손들이 직접 벌초하는 것보다는 전문가에게 위탁해 벌초의 불편함과 사고의 위험성을 줄이는 것이다. 또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따르면 2015년 사망자의 화장률은 80.5%로 잠정 집계되어, 80%를 돌파하게 되었다. 20%도 채 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화장 후 유골을 봉안당에 안치하거나 강 또는 바다에 뿌리면서 전문가들은 몇십 년 내에 벌초 대행업체뿐 아니라 벌초 문화 자체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리라 예측한다.
명절 음식 만들기와 벌초라는 노동이 간소화되면서 사람들은 추석과 함께 찾아오는 긴 연휴를 즐기기 시작했다. 명절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번 연휴 동안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출국한 사람 수는 여름 성수기 출국 행렬과 맞먹었다. 국내 호텔에서도 명절 비수기를 겨냥한 스파, 레스토랑 등의 패키지 상품을 통해 긴 연휴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또 명절에 고향을 방문하고 여행지를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D턴족’을 겨냥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명절 기간이었던 지난 10일부터 18일까지를 ‘한가위 문화·여행 주간’으로 지정했다. 이 기간에 주요 관광지의 입장료를 할인하거나 무료화해 D턴족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평소에 가지 못했던 국내 주요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명절 때 고향에서 가족이 모여 다 함께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는 등 명절 음식을 준비한 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전통이 있었고, 현재도 이 전통을 이어나가는 집이 있다. 반면, 명절 전후에 차례와 성묘를 일찍 끝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긴 연휴를 활용하여 여행을 떠나는 집도 늘고 있다. 하지만, 추석이라는 명절의 뜻을 잊고 단지 긴 연휴를 즐기기만 한다면 언젠가 추석의 참뜻은 잊힐 것이다. 추석이 실속 있게, 개성 있게 변했다고 하더라도 추석의 뜻을 기억하면서 명절을 보낸다면, 더 뜻깊은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