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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사람이 되자
[375호] 2016년 09월 07일 (수) . .
한국 사람들은 목이 탄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이웃 국가 일본은 벌써 21개나 탔다. 문학상과 평화상까지 하면 24개이다. 우리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을까?
우리는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었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일본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유교와 불교는 백제가 이른 시기에 전해주었지만 (각각 4세기와 6세기), 성리학은 늦은 시기인 가마쿠라 막부(1185-1333) 때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16세기 말에 이미 조선을 앞질렀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 일행은 일본의 풍요로움에 놀랐다. 일본열도는 넓이도 한반도보다도 크고, 인구도 역사 이후 내내 한반도를 앞질렀다.
일본은 성리학이 발달하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다 3년 만에 조선으로 생환한 학자 강황을 통해서 성리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크게 발달하지는 못했다. 성리학 세상이 된 조선과 달리, 다소 경직된 성리학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 일본 발전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조선은 위화도 회군 이후 중국의 조공국(朝貢國)이 되었지만, 일본은 본국 백제를 구하기 위해 수만 명의 군대를 보낸 백촌강 전투 패배 이래로, 받들어 섬긴 나라가 없다. 일본이, 한국과 달리 성리학을 추종하지 않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중국을 앞질러 독자적으로 발달한 이유일 것이다.
많은 한국 학생들은 질문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서양 학문의 근본은 질문하기이다. 질문을 금기시하고 절대적인 믿음을 강요하던 중세 기독교를 극복하고 온갖 질문이 터져 나온 게 르네상스이고 산업혁명이며, 지난 200년간의 과학 역사이다. 반면에, 한국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부모와 동격인 스승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고 무조건 복종하는 경향을 보이다 보니 질문을 하지 않게 되고, 이러한 성향이 몸에 배어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미국 명문 대학에 많이 입학하지만, 중도탈락률이 거의 50%에 달한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성리학자들은 답은 성인들이 경전에 다 밝혀놓았으므로 경전에서 답을 찾고 경전을 달달 외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경향이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 성인의 의견에 이의를 달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다. 정조 때 송시열과 쌍벽을 이루던 대학자 윤휴는 사약을 받고 죽었다. ‘공자의 해석에 있어서 왜 주자의 의견만 따라야 하느냐, 왜 나는 새로운 해석을 못 하느냐’고 한 게 문제였다.
학문을 ‘이미 밝혀진 진리를 외우는 것’으로 간주하는 주입식 전통이, 전 세계에서 가장 IQ가 높은, 한국 학생들의 유학 실패로 나타난다.
상당수의 학생은 수업시간에 좀처럼 질문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질문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남의 지식을 외우고 모방만 해서는 남이 발견하지 못한 걸 발견할 수 없다. 질문은 일종의 벤처사업이다. 엉뚱한 질문을 하더라도 그중 100에 3 정도가 의미 있는 질문이고 또 그중 하나라도 괜찮은 질문이면 노벨상을 탈 수도 있다. 예컨대 수학사에서도 남들이 안 한 것을 그리고 남들로부터 특히 당시 대가들로부터 심지어 사이비 수학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한 지적 작업이 대단한 위업이 된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대학 학생들이 배우는 복소해석학이 있다. 이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수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해결 문제인 리만가설을 탄생시켰다.
스승의 연구만 따라 해서는 자기 고유의 독창적인 연구가 있을 수 없고, 그 결과 자기 고유의 사상을 담은 저서도 낼 수 없다. 진리는 발견하기도 하지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진리라 생각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묘사하는 방법일 뿐이기 때문이며, 묘사는 창조이기 때문이다.
한나라 때 대학자 왕충은 저서 <논형>에서 ‘유생들이 스승을 맹신하며 성현의 말은 모두 거짓이 없다고 여긴다’고 비판했다. ‘성인이라고 해서 선천적으로 예지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독서와 사유를 통해 능력을 함양했을 뿐이다’라고 지적한다. 왕충은 당시에 성인으로 추앙받던 공자 맹자 묵자를 가차 없이 비판한 대단히 발칙한 자였다. 예컨대 왕충은 ‘유가들이 주장하듯이 해와 달이 완벽한 구체인 것은 아니며 그리 보이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증거로, 하늘에서 떨어진 울퉁불퉁한 운석을 예로 들었다. 이는, 1609년에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달 표면을 관찰함으로써 달이 완벽한 구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갈릴레오에 무려 15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이처럼 왕충은 당시 통념에 도전한 발칙한 사람이었다. 만약 이런 전통이 이어졌다면 동양이 서양에 뒤처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과학과 철학의 역사는 발칙한 자들의 역사이다. 한때 발칙한 생각들이 진부한 생각들로 바뀌는 게 학문의 역사이다. 우리 모두 두려워하지 말고 발칙해지자. 우리와 인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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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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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2016-12-18 22:44:21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도 발칙한 질문을 늘 하며 살아야겠군요.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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