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 병역특례제도 폐지
기획취재 - 병역특례제도 폐지
  • 김휘 기자
  • 승인 2016.06.0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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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이공계 대체복무 제도 폐지 추진
지난달 16일, 국방부가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수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 2023년까지 대체복무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산업분야 대체복무 배정 인원 추진 계획안’을 각 정부부처에 발송했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매일경제에서 단독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 신규 선발자 수는 계속 줄어들어, 2023년에는 제도가 전면 폐지된다. 특히, 해당 자료에서 이른바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2019년부터 전격 폐지된다.
전문연구요원제도(이하 전문연)와 산업기능요원제도(이하 산업체)는 각각 우리나라 병역의무 이행방법 중 하나다. 병무청에 따르면 전문연과 산업체는 병역자원 일부를 군 필요인원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국가 산업의 육성·발전과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병무청장이 선정한 지정업체에서 연구 또는 제조·생산인력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데서 그 의의를 가진다. 전문연구요원들은 연구기관에서 과학기술 연구·학문분야에 종사하고, 산업기능요원들은 제조·생산 분야에 종사한다. 복무 기간은 현역병 입영대상자의 경우 전문연 복무자 36개월, 산업체 복무자 34개월이다.
국방부가 대체복무 제도 폐지 방침을 내놓은 주된 이유는 적정 병력 규모 유지 때문이다. 국방부의 발표로는 현재 35만 명 정도인 20세 남자 인구는 2022년쯤 25만 명 수준으로 급감한다. 군은 인구 감소와 군 인력 정예화를 위해 현재 63만여 명인 병력을 2022년 52만 2천 명으로 감축할 계획이지만, 이렇게 줄여도 2020년대에 들어서면 병력자원은 연간 2만∼3만 명 부족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을 포함하는 대체복무요원 복무제도, 의무경찰이나 공중보건의 등 전환복무요원 제도도 전격 폐지함으로써 현역병과 사회복무요원만 운용할 계획이다. 개인의 박사학위 취득 과정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이른바 ‘특혜 논란’또한 국방부의 결정의 원인 중 하나다.
국방부의 방침에 대한 과학기술계와 이공계 대학생들의 반발은 아주 거세다. 지난달 19일 오전, 전국 10개 대학 29개 학생회로 구성된 ‘전국 이공계학생 전문연구요원 특별대책위원회’(이하 특대위)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국방부의 전문연구요원 제도 폐지 계획을 전면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같은 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연구소 보유 기업 317개 사를 대상으로 ‘전문연구요원제도 폐지에 대한 산업계 긴급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기업 중 90.4%가 폐지에 반대했다. 지난달 23일에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국방부의 이러한 방침에 반대하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우리대학 보직자들과 학생 대표자들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김도연 총장은 “나 자신도 전문연구요원을 통해 대체복무를 했다. 과학기술은 국방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분야이며, 대체복무는 경력 단절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제도다. 서울대, KAIST 등 8개 대학 총장과 함께, 국방부의 방침에 대해 강한 반대를 담은 의견서를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학부총학생회(이하 총학), 대학원총학생회(이하 원총) 등에서도 반대 입장 표명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대학 총학과 원총은 특대위에 참여했으며, 김상수(생명 13) 학부 총학생회장은 정론관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자 3명 중 1명으로 참여했다. 김 총학회장은 “총학에서는 전체학생대의원회의를 거쳐, 국방부의 방침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으로 확정 내렸다. 앞으로 다가올 군인 수 감소 현상이 2000년대 초반부터 예측됐음에도 국방부에서 군인 수 감축 계획을 반복적으로 미루고, 일방적으로 대체복무 제도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원총에서는 우리대학 모든 학과 주임교수들에게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지난달 24일부터 일주일 간 전문연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조현태(수학 통합) 원총 대표자운영위원회 의장은 “일반병과 다른 방식이지만, 대체복무자들도 군 복무자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한다. 전문연이 국방부 기술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보이기 위해, KAIST, UNIST 원총과 협력해 객관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본지는 이를 파악하기 위해 교내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했다. 총 응답 754개 중 남성은 659명이었고, 이 중 64.1%가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상태라고 답했다(전문연구요원, 기술사관 선발 등으로 대체복무가 확정된 인원 제외). 군 미필자 중 복무 계획이 있는 사람은 16.1%에 불과했으며, 미필자 중 86.7%가 국내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고 있었다.
한편 국내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사람들 중 84.7%는 전문연·산업체가 폐지될 경우 기존 계획에 변동이 생긴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국내 대학원 이외의 진로 계획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질문에 대해 57.1%의 ‘예’응답률을 보인 것과 비교된다. 계획 변동이 생긴다고 응답한 사람들 중 49.2%는 제도가 폐지될 경우 해외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 중 68.6%의 사람들은 ‘대체복무가 국내 대학원의 큰 메리트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34.1%는 국내 대학원 진학에서 취직으로 계획을 변경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 중 53.8%의 사람들이 ‘군 복무 기간과 대학원 기간을 합치면 지나치게 길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응답자의 대부분은 국방부의 전문연·산업체 폐지 추진에 대해 반대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 관계자가 18일 “유관 부처와 협의 과정에서 폐지 방침이 보도돼 곤혹스럽다”라며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더 합리적인 방안으로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국방부는 한 발 뒤로 물러난 상태다. 국방부는 또한, 정부 부처뿐 아니라 이공계 학교와 중소기업체 등의 의견을 듣고 공청회도 개최하며 의견수렴에 나설 계획이다. 전문인력을 군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심해보겠다고 밝혔다.
전문연과 산업체가 도입된 1973년에 국군 장병 수는 8년간의 파월(베트남 파병)로 인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 제도들이 정착됐고, 40여 년간 이어져 온 것은 학문과 기술의 연구, 산업의 발전이 국가 발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원의 발전에 있어 대체복무는 효과적인 유인책으로 작용했고, 대체복무자 제도를 운용함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것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결국, 국방부의 근시안적인 현 방침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단, 이공계는 전문연과 산업체의 ‘특혜 논란’이 있음을 파악하고, 이 제도들이 적법한 대체병역제도이며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낸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개진하며 비(非)이공계와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공계 구성원으로서 우리 각자는 대체복무제도가 국가적인 지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도피성 진학, 무분별한 혜택 요구를 지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