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30년, 이제 역사의 벽을 뚫는 날카로운 창끝이 돼라
개교 30년, 이제 역사의 벽을 뚫는 날카로운 창끝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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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6.0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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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포스텍이 개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포스텍에 기대했던 역할 중의 하나는 우리 기초과학의 수준을 견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기초과학은 아직도 선진국과의 수준 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포스텍의 향후 30년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성취했으며 무엇을 위해 정진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보다 더 근본적인‘과연 기초과학의 후발주자가 그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라는 의문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먼저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거의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의심할 바 없는 기초과학의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일본이 이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을 인내해야 했다. 사실 일본은 기초과학적 측면에서 매우 특이한 예이다. 현재의 기초과학 강국은 모두 유럽 국가이거나 혹은 유럽 전통을 이어받은 국가(미국)이다. 이들은 르네상스 이후 진행된 과학혁명, 산업혁명의 주도자 또는 참가자였으며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만이 이 전통의 흐름 속에 있지 않은 후발주자였으며, 후발주자로서 선도그룹에 성공적으로 합류한 경우이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기를 원한다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선례이다.
일본은 1867년 봉건 막부에서 일본 국왕으로 정권이 이양되면서 봉건국가에서 근대국가로의 변혁이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한 세대만인 30년 후 청일전쟁, 40년 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미 국력이 열강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세계에 알렸다.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국가 변혁은 한 세대에 가능함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 최초의 노벨상은 1949년 유카와가 받았다. 산업화의 성공과 최초의 노벨상 사이에는 50여 년의 간극이 있다. 이 50년은 그들에게 어떠한 시절이었나? 이 시절의 일본은 세계의 흐름에 뒤처진 국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세계열강 중의 하나로 행세하고 있었고 미국과 전쟁을 벌일 정도의 국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기초과학에서 강국은 아니었으며, 유카와의 수상 이후에도 일본은 여전히 기초과학의 선진국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또다시 50여 년이 흐른 후인 2000년대에 와서 물리, 화학에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비로소 기초과학의 일류 그룹에 합류하게 되는데, 이들 수상자는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이다. 아마도 유카와의 경우는 개인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경우고, 지금의 다수 수상은 일본의 기초과학이 최고 수준에 이른 결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로부터 얻는 중요한 교훈은 산업화는 한 세대에 이룰 수 있지만, 기초과학의 최고 수준 도달은 100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린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학문 수준은 세월을 딛고 자라는 그 무엇이 채워져야 한다. 산업화는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위로부터의 견인으로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지만, 학문의 최고 수준 도달은 아래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뿌리가 충분히 다져진 이후에야 꽃이 핀다는 차이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초과학의 뿌리가 자라는 토양은 그 사회의 문화이고, 이는 기초과학의 수준이 우리의 의식 수준, 가치관, 생활 양식 등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세월이 필요한 이유요, 눈에 보이는 그래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제도 개선만으로는 또 소수 몇 사람 엘리트만 키워서는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의 기초과학으로 돌아가 보자. 산업화는 우리도 한 세대에 해낼 수 있었다. 군사정부에 의해 60년대에 시작된 산업화는 88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한 세대 만에 성공적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였다. 바로 이 시점에 포스텍이 개교되었음은 설립자의 역사적 혜안과 포스텍의 역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후 30년, 우리는 선진국의 문턱까지 왔으며 다수의 기업은 세계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일류 기업들의 활약과 비교하며 우리 기초과학의 수준을 염려한다. 역사가 우연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일본의 경우가 보편적인 원리를 포함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산업화 이후 50년의 간극에 속하는 시대를 가고 있으니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최초의 노벨상은 아마도 2040년 이후가 될 터이고, 진정한 기초과학의 강국 진입은 더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도 바뀌고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도 달라졌으니, 또 정보도 풍부하고 국가의 투자 의지도 있으니 시간을 좀 당길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바람이요 포스텍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어쨌든 2040년을 최초의 노벨상이 가능한 해로 가정하면, 25년 후의 일이므로 매우 먼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20년 30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업적의 산출과 수상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고려하면 지금으로부터 10년, 15년이 우리의 기초과학이 역사의 벽을 돌파해야 할 시기이다. 두꺼운 벽의 돌파는 날카로운 창끝을 필요로 한다. 바로 이것이 포스텍에 주어진 역할이요, 혜안을 가졌던 설립자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일 것이다.
포스텍, 역사의 벽을 뚫는 날카로운 창끝이 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