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물건이 어디 있어요?
쓸모없는 물건이 어디 있어요?
  • 이민경 기자
  • 승인 2016.05.0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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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물건이 있으면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매년 폐기물 발생량은 증가하고 있다. 상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제품들이 시중에 나오고 있으며, 그 많은 제품은 쓰고 나서 ‘버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버리고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면 새로운 제품은 잠재적인 쓰레기가 된다. 어제 유행하던 것이 오늘은 유행이 아니라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귀중한 원료들이 매일 쓸모없는 쓰레기로 전락한다.
이러한 쓰레기 범람 사태의 해결책으로 많은 국가들은 ‘재활용’을 택하고 있다. 한국폐기물 협회에 따르면 매년 재활용률은 82~85%로 유지되고 있다. 쉽게 버리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경제 체제에서 재활용하거나 분해 잘 되는 소재를 이용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폐기물량 자체를 줄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쓰레기 해결책으로 처음부터 폐기물 발생을 예방하는 데 역점을 두는 국가들이 생겨났다. 프랑스 환경부는 법령으로 억제를 선포하기보다 국민들에게 폐기물 발생 억제가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며 장기적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2004년부터 폐기물을 덜 배출하는 환경적인 디자인과 산업 과정을 위한 연구개발 프로젝트도 실시하고 있다.
재활용은 모두 리폼을 통해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프랑스에 이어서 많은 국가가 리폼 과정 없이도 원래 용도로써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 경우 ‘2차 용도’로 곧바로 사용 가능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버리지 않기에 쓰레기가 되지 않고, 새롭게 다른 용도로 사용이 가능한, 또는 버릴 것에게 새로운 용도를 부여하는 아이디어 상품들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제품은 ‘스프라우트(Sprout) 연필’이다. 이름 그대로 식물이 자라나는 연필이다. MIT 대학원의 마리오 볼라니가 개발했으며, 연필에 씨앗이 담긴 캡슐을 부착하여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 연필을 흙에 꽂고 물을 주면 식물이 자라도록 했다. 한 종류의 씨앗이 아닌 토마토, 가지, 피망, 로즈메리 등 다양한 작물 연필이 존재한다. 영국의 디자이너 벤허트리는 패키지 디자인으로 흙에 묻으면 채소가 자라는 ‘종이 포장지’를 만들었다. 종이 라벨 속에 씨앗이 숨겨져 있다. 당근의 라벨을 묻으면 당근이, 아스파라거스의 라벨을 묻으면 아스파라거스가 자라난다. ‘심는 책’도 있다. 책이 발행되면서 수많은 이산화탄소와 폐기물이 발생하고, 나무는 사라진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아르헨티나의 어린이 책 출판사 페케뇨 에디토르(Pequeño Editor)는 Tree Book Tree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나무로부터 온 책을 다시 나무에 돌려준다는 의미의 프로젝트로 8세에서 12세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My father was in the Jungle>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을 만들었고 책을 읽고 난 뒤 책을 가져왔던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낸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표지 안쪽에 씨앗을 심어 책을 묻으면 보랏빛 꽃을 피우는 자카란다 나무가 자라게 된다.
구호 상자도 다양한 용도로 재탄생하고 있다. 한국 디자인 회사 언플러그 디자인(Unplug Design)에서 만든 ‘드림 패키지(Dream package)’가 있다. 재생 가능한 종이로 만든 원통형 상자는 물결 모양의 패턴으로 되어있어서 패턴을 따라 잘라서 이어붙이면 동그란 축구공이 된다. 일본 대지진 당시 갈 곳이 없어진 애완동물 문제를 눈여겨본 일본의 애완동물 보호단체 Animal Relief Headquarters는 조립하면 ‘애완견 집’이 되는 구호 상자를 만들었다. 한국의 정화진 디자이너는 골판 재질의 구호 상자가 컨테이너 같은 구조물의 ‘임시 거주지’가 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으며, 유니세프는 재난 지역 현장의 아이들을 위해 UNICEF INNOVATION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구호 상자를 재난 지역 아이들을 위한 ‘교육용 장난감, 지도, 수납함, 침대’ 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호주의 DIY(Do It Yourself) 가구 판매업체 DIY Living은 가구를 포장한 패키지 또한 하나의 가구가 될 수 있도록 상자 크기에 따라 ‘커피 테이블, 의자, 전구’ 등의 다양한 가구로 재탄생시켰다. 우리나라 버킷 스튜디오는 옷걸이가 되는 쇼핑백 'H+BAG'을 만들기도 했다. 2013년에 우리나라 환경부가 보고한 제4차(2011-2012) 전국 폐기물 통계조사에 의하면 폐기물의 물리적 조성비 중 종이류가 41%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재난 지역에서도 각 나라가 구호물품을 지원하면서 낭비되는 상자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세계적으로 종이류 낭비가 많은 만큼 낭비 예방은 쓰레기 문제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커피 소비량 1위 국가 미국에서는 생활폐기물로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를 재탄생시켰다. 미국 버클리 경영대 학생 니킬 아로라와 알렉스 벨레츠는 영양분이 풍부한 커피 찌꺼기를 버섯을 키우는 데 사용하는 ‘BTTR(Back to the roots)’을 만들었다. 한국에도 (주)꼬마농부가 개발한 ‘친환경 버섯 키트’가 있다. 우리나라 전환주 디자이너의 Riti 프린트기는 커피 찌꺼기를 ‘잉크’로 사용한다.
2차 용도로 사용 가능한 이러한 제품들은 버려지는 물건에 창의력과 디자인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한다는 점에서 업사이클링(Upcycling)과 비슷하지만, 제품을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앞으로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가치를 지니는 친환경 제품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