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선택하지 못하는가? - 2016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 강연 후기
우리는 왜 선택하지 못하는가? - 2016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 강연 후기
  • 강미량 / 화학 13
  • 승인 2016.02.1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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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장애’라는 말이 있다. 여러 선택지를 두고 쉬이 결정하지 못하거나 아예 선택지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선택 장애’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선택을 미루고 있으며, ‘추천’이란 미명으로 그 허울을 가린다. 작게는 외식을 하러 나갈 때 막내에게 메뉴 선정을 맡기거나, 수강신청 기간에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교양 과목을 뭐 들을지 추천해달라’는 것부터 크게는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스펙을 나열해 놓고 회사 계열사나 직업을 골라 달라는 취업 준비생들의 예시가 있다.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호모 사피엔스들이 어쩌다 선택 장애를 앓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이제껏 우리에게 제대로 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뭔가 간절히 원하기도 전에 수많은 것들이 주어졌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자. 글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전에 글자를 배웠고, 피아노에 호기심을 갖기 전에 피아노 학원에 이끌려 들어갔다. 누군가에 의해 가고 싶은 중학교, 고등학교, 더 크게는 대학교까지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것을 고르거나 선택지 자체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 목소리가 움트기도 전에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다.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어색한 것처럼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생김새를 모른다. 또한, 마음에 우러나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으므로 말을 하기 위한 힘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특이하게도 모든 연령대에 ‘인생의 답’이 있는 우리나라의 환경은 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10대 때는 공부를 잘해야 하고 20대에는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 요즘엔 꼭 유럽 여행 한 번쯤은 다녀와야 제대로 된 경험을 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 듯하다. 아등바등 살다가 30대가 되면 결혼에 골인함과 동시에 내 집 마련을 꿈꿔야 한다. 정석의 길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라치면 주위 사람들이 더 불안해한다. 환영받기는커녕 명절 때 욕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사태는 더 심각해져 이제는 인생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의 선택에도 답이 있다. 믿기 힘들다면 네이버에 ‘일본 3박 4일 자유여행’이라고 쳐보자. 블로그에 올라온 수많은 엑셀 파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엑셀 파일에는 웬만한 여행 경로, 맛 집, 비용까지 다 적혀 있다. 자신이 여행 경로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답이 있는 문제였을 뿐이다. 그 엑셀 파일에 나오지 않은 곳을 찾아본 적이 있는가? 자유여행이라기보다는 여행사가 빠진 자리에 네이버가 들어온 ‘네이버’ 여행에 가깝다.
이러한 선택 불가능성의 기저에는 모든 가능성을 계산하는 사고가 놓여있다. `‘정도(正道)’로 가지 않을 때 잃을 것들을 생각하여 이미 정해진 루트로 편입해버리려는 것이다. 어떨 때는 이것이 가장 편하게 사는 방법일 수 있다. 괜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이것저것 고민하느라 머리 아플 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잃음과 얻음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실패를 통해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길을 잃어버렸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 둘은 현재 닥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린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유명한 작가 조앤 K. 롤링은 ‘우리가 가진 능력보다 진정한 우리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라고 말하였다. 선택 장애는 배려나 겸손이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에 솔직해질 수 없는 소심함이며,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가면이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직접 선택했을 때 자신만이 얻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진정으로 무엇인가 선택했을 때, 우리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빛나는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