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할 수 없다
사람은 변할 수 없다
  • 이은재 / 생명 13
  • 승인 2015.12.0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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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네이버에 변화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도전, 변천, 변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변화 명언 등등이 나온다. 이제 변화 명언을 검색하게 되면, ‘당신이 변하지 않는 한, 이미 가진 것 말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일어서지 못한다.’ 등등이 나타난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항상 배워왔다. 변화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것이 당연하고 옳은 것으로 생각하며, 항상 스스로 바뀌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때에도 변화를 다짐하고, 학기가 끝날 때에도 변화를 다짐하며,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오면서도 변화를 다짐한다. 그리고 나중엔 변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변화에 대한 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누군가를 바꾸려고 들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남을 바꾸려 드는 자세도 건방지고 거만한 자세일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쉬이 바뀌지 않으니 마음고생하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실제로 변화란 어렵다. 그래서 변화가 그렇게 찬양 받고 있는 것이리라.
 어릴 적, 말이라는 걸 안 하는 아이였다. 놀러 다니지도 않았고, 놀지도 않았다. 학교에 그냥 가서 끝날 때까지 말없이 그렇게 앉아있다가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형이랑만 놀곤 했다.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지만, 친구도 없었다. 당연히 어디 나서서 말하는 경우는 없었고, 엄마에게 길거리 호떡 하나 먹고 싶다며 내 의견을 말하는 것도 못했다. 또한, 미소를 지을 줄 몰랐다. 지금의 나는 이런 사람인가? 주변 사람들은 날 이렇게 볼 것 같다. 장난치기 좋아하고, 스킨십 잦고, 이상한 아이? 정도로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찌 됐든 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나는 변한 걸까?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웃음이 없는 내 모습을 지적하셨다. 그러자,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나 자신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누구한테 말도 못 걸고, 누군가에게 다가가지도 못하던 모습을, 그런 나를 바꾸고 싶어졌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웃는 것’이었다. 웃는 것이 어색했다. 미소를 짓는 것이 어색했다. 내가 나를 어색해했다. 입꼬리를 올리는 근육도 어색했다. 그땐 그랬다. 그래서 매일같이 거울을 보며 어색하지 않은 미소를 지으려고 연습했다. 웃는 것을 연습했다. 난 그렇게 변화를 시작했다. 그 뒤로도 변화를 위한 일을 해오고 있다. 일부로 나서는 일을 맡아보기도 하고 억지로 말을 꺼내기도 하고, 다른 이들에겐 사소한 일 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큰 결심과 노력이 필요한 일들을 했다. 변화를 시작한 지 이제 8년째이다.
 그래서 난 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변하지 않았다. 그때의 그 찌질했던 모습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여전히 난 소심하다. 발표 한번 할라 쳐도 심장이 뛰다 못해 터질 거 같고, 손이 떨리고 목소리도 떨리고 걱정이 많다. 여전히 난 찌질하다. 하지만 이것들이 잘 숨어있을 뿐이다. 내 8년의 시간 덕분에 장난치고 나대는 이상한 아이의 모습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이 지금의 나일까? 두 개 모두 나의 모습이다. 둘 다 부정할 수 없는 나 자신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본성은 바꿀 수 없다. 내가 8년의 세월을 투자했지만, 아직도 그 본성은 남아있다. 다만, 내가 추구했던 변화는 나에게 새로운 나의 일부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인간의 진화에서 인간의 뇌 신경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이 생기기만 해서 점점 복잡해졌고 결국, 지금의 복잡한 구조를 이루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성질을 없애지 못한다. 다만,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 시절의 그 단순함이 사라지고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이처럼 새로이 나의 일부를 만들어 ‘나’라는 인물이 복잡해진 것이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던 본성은 바꿀 수 없다. 그리고 처음 만들어질 때의 나는 완벽할 리 없다. 그러므로 시간이 아무리 지나더라도 누구나 원래의 모자란 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것 역시 원래 자신이 가진 단점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 단점 역시, 여전히 ‘나’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나를 알고, 부족한 자신을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나’를 만들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나의 부족함을 알기에, 남의 부족함을 이해할 수 있고, 남을 배려하고 품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내가 ‘나’임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내 잘못과 못남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말은 쉬운데, 어려운 일이다. 그 누가 스스로 못났단 것을 인정하는 것이 기분이 좋을까. 하지만 그 누구나, 처음엔 모자랐고, 그 모습이 사라지진 않는다. 이를 인정하자. 우리는 모두 모자라다. 이를 인정할 때, 우리는 겸손해지고 남에게 거만해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항상 옳을 순 없다.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알고 새로운 나를, 모자란 ‘나’ 위에 덧씌우자. 남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지 말자. 왜냐면 나는 모자라니까. 최근 학교에 각종 일들이 있고, 그에 따른 분쟁도 많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갈등은 많이 존재한다. 이것들을 이처럼 이해하는 것으로 갈등과 분쟁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에게 변화란 내가 변하는 게 아니라 나의 일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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