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다
하기 싫다
  • 편집장 김상수
  • 승인 2015.09.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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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는 ‘싫다’는 말이 무서웠습니다. ‘싫어’를 들으면 내 무엇인가가 부정되는 기분이었죠. ‘싫다’는 말은 잘 하지 못했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도 소심하게 하곤 했습니다. 나이와 함께 싫다는 말을 듣는 횟수는 늘고, 그렇기에 격한 반응을 하게 되는 횟수도 줄었지만 여전히 싫다는 말을 들으면 서운합니다. 다만 요즘은 싫다는 말이 조금씩 늘어가는 스스로를 느낍니다. 특정 사람, 사물이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하기 싫다’고 말하곤 합니다.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뭔가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우리들끼리의 말장난은 제 최근 상태를 정확히 대변합니다. 할 일이 없는 게 아닙니다. 화가 나거나 불만인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기 싫은 거죠. 과제나 일을 하지 않고 있을 때, 그 이유가 무엇이라도 있다면 다르게 표현할 수 있지만 정말 ‘그냥 하기 싫은’ 경우도 많습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과 게으름이 섞인 결과가 아닐까 싶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문 조판 작업, 써야 하는 글, 당장 내일로 다가온 발표, 해도 줄지 않는 과제 앞에서 자주 게임으로 도피했었습니다. 혹은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내 뜻대로 만들어나가는 나만의 세계를 더 정교하게 구축하기 위해 몇 시간쯤은 우습게 사용했죠. 쌓여있는 할 일에 위협받을수록 더더욱. 이런 행동은 결국 문제 해결 시간을 줄여버리는 최악의 수가 되는 걸 알면서도 그랬습니다.
스스로 이런 상상의 세계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적도 있습니다. 상상의 원천이자 나만의 특별함으로 생각했죠. 아주 틀린 생각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세상은 있고 이 안에서 얻는 즐거움이 엄청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학관 1층에서 시위삼아 48시간 게임을 하고, 학교에서 취미삼아 농사를 짓고, 상상보다 짜릿한 사랑을 하는 몇 가지 일들을 거치며, 현실도 상상만큼 혹은 그 이상 재미있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갑니다.
특히 모든 일에 책임감이 섞였을 때 더 즐거운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신문사 기자로서 내 취재를 읽고 사람들이 새로운 판단을 하게 되었을 때, 공감하며 위로를 얻을 때. 물론 자랑스러우면서도 그저 쓰고 도망갔던 수많은 글들에게 부끄러웠습니다. 상상에서는 지우면 그만인 일들일지라도 현실에서는 어딘가에, 혹은 누군가에게 냉혹하게 적히는 중이니까요.
이제 책임감을 조금 더 가져 보려 합니다. 비록 6개월 동안의 짧은 편집장이지만, ‘하기 싫어’라고 말하는 나를 치료하고 부끄럽지 않은 신문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높은 학교의 수준  에 걸맞는 포항공대신문은 그동안 많은 일을 겪어 오면서도 다양한 일들을 객관적으로 다루고, 외압 없이 우리대학을 기록해 왔습니다. 부족하게나마 대업을 이어나가려 합니다. 포항공대신문의 새 편집장 김상수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