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과 자아
Facebook과 자아
  • 김문년 / 화학13
  • 승인 2015.09.23 12:1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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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는 SNS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한편으로는 개인과 바깥세상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 SNS의 의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대중의 어두운 속성을 비추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손안의 사회’는 시사점을 남겨준다.
Facebook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친구의 소개로 이 획기적인 SNS를 알게 되었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형형색색의 빛을 내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수평적인 사회 안에서 여러 사람이 자기 본연의 감정과 느낌들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하얀 캔버스 위에 자신들의 색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장식해나가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좋아요’ 버튼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훌륭한 도구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좋아요’는 Facebook을 그림자들만이 떠도는 곳으로 만든 비극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캔버스 위에 다른 두 색의 물감을 칠하면 서로 번지고 섞이게 되어 본래 색을 잃어버리듯이, 우리가 그려가던 “아름다운 그림”은 번지고 뒤섞여 망가졌다.
뒤섞인 물감들은 의미가 퇴색되고, 획일화된 사람들 속에 섞인 자아는 그렇게 그림자가 되어 떠도는 것 같았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사람은 천성적으로 다수에게 동조하도록 만들어진 동물인 것 같다. 이는 다수란 존재를 엄폐물 삼아 책임을 분산하고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깊은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보면 방관자 효과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 동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능으로 개인이 사회 집단에 적응하고 결속력을 강화하는 선 기능이 있다. 이런 인간의 기본적 기능은 사회적으로 당연시 되는 규범들을 따르도록, 또 사람들의 흐름에 순종하도록 일조한다. 남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남들과 어긋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앞서 물감 이야기에 빗대어 언급했듯이, 이러한 인간의 측면에 대해 걱정스러운 것은 다수의 흐름에 휘말려 자신의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Facebook을 뒤덮는 글들을 보면 이런 사례가 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점점 잦아지는 마녀사냥 글을 보면 많은 수의 ‘좋아요’에, 하나같이 획일화된 반응들이다. 마치 인민재판을 보는 것 같다.
 비단 Facebook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녀사냥’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 것은, ‘마녀사냥’ 행위 자체보다는 그것이 용납될 수 있는 배경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함이었다. 주체적인 생각, 느낌보다는 동조 심리와 군중의 호응, 인기가 더 우선시되는 분위기 덕에 마녀사냥 글이 지지를 얻고 계속 활개 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Facebook의 사례는 우리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반적인 사회에서도 군중의 획일화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공통으로, 절벽을 향해 신이 나게 달려가는 레밍쥐처럼 소신 없이 군중의 물결에 따라다닌다. 사람들은 주체성을 등지고 대중의 흐름에 따라 암묵적으로 획일화된다. 다른 느낌은 용납되지 않는 듯하다. 군중의 힘을 빌려 열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저 영혼을 잃어버린 ‘일개 부품’일 뿐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영혼 없는 사회(획일화)에선 소통과 교감의 희망조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가면 모임에 나간다. 만일 가면을 쓰지 않고 나간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소외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자신은 가면 밖으로 나올 기회가 없고, 아무도 서로의 얼굴을 알 수도,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진심을 숨겨둔 채 가짜 자아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서로 믿지 못하게 된다. 가면 모임에 공감이란 없다. 더 멋진 가면을 쓸수록 자신을 고립시킬 뿐이다. 가면 모임은 소외의 다른 말일 것이다. 어쩌면 어린아이들이 어른보다 빨리 친해질 수 있는 것은 상식이나 남들의 행동을 가슴 없이 따라 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순수한 내면과 본래의 색을 보여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사람들의 물결에 흘러가는 것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남들의 반응을 살피며 군중 심리에 휘둘리는 것보다 본래의 나를 확립해나가는 것이 더 지혜로워지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면보다는 영혼이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림 위의 물감은 번져서 색을 잃는 것 보다 자신의 고유한 색을 간직한 채 주변의 다른 색과 조화될 수 있어야 진정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가치 있는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물감이다. 자신 안의 느낌, 그리고 진심을 간직한 사람들이 진정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