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을 아십니까
'궁'을 아십니까
  • 최태선 기자
  • 승인 2015.09.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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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우리의 국궁
올림픽 효자 종목은 무엇일까? 바로 '양궁'이다. 우리 나라는 각종 양궁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고 있다. 우리나라의 양궁이 강한 이유는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의 시조왕인 '주몽'의 이름은 활을 잘 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사극이나 영화를 보면 활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과거 큰 인기를 얻었던 사극 '주몽'과 영화 '최종병기 활'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활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소재이다. 하지만 활을 깊이있게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에 포항공대신문은 친숙하지만 잘 모르는 '활'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활을 잘 쏘는 것은 비단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부여와 고구려 때부터 우수한 활과 화살이 있었고, 중국의 역사서 <사기>에도 국궁의 우수함이 적혀있다.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 수렵도에 나오는 각궁은 오늘날의 각궁에 비해 소재와 형태가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 민족은 선조들의 전통을 2천 년 넘게 이어받으며 고유의 민족 궁을 사용해왔다.
국궁의 역사를 살펴보면 활에 관한 기록도 많고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남긴 명궁도 많다.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 조선을 세운 이성계 등 다양한 위인들이 명궁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삼국시대의 국궁은 주로 사냥이나 전투를 위해 만들어졌다. 이때 선조들은 주로 나무나 짐승 뼈를 이용해서 궁을 만들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국궁은 사냥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발전했다. 특히 전쟁용이 아닌 정신수양을 위한 활쏘기가 유행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고급 스포츠로 골프를 하듯, 조선시대 선비들은 국궁을 통해 심신단련과 호연지기를 길러왔다.
선조들은 크기나 재료 또는 형태에 따라서 국궁을 분류했다. 활의 길이를 2m 기준으로 이보다 크면 장궁, 작으면 단궁으로 분류한다. 활의 제작과정에서 쓰인 재료에 따라 나무로 만들어지면 목궁, 대나무로 만들면 죽궁, 소뿔로 만들면 각궁, 놋쇠로 만들면 철궁으로 분류했다. 더 나아가 제작에 쓰인 재료가 몇 가지 종류인가에 따라 단일궁과 복합궁으로 구분했다. 단일궁은 나무나 대나무 한 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활이다. 복합궁은 나무, 대나무, 소뿔 등을 여럿 이용하여 만들었다. 궁의 형태에 따라서는 긴 모양의 직궁, 반쯤 둥글게 휜 반곡궁, 완전히 둥근 모양의 만곡궁으로 분류했다.
국궁은 활의 외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용도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분류된다. 각궁은 고구려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대표적인 활로 사용됐다. 중국의 역사에는 맥궁으로 적혀있고 크기로는 단궁이고 형태로는 만곡궁이며 재료로는 합성궁에 해당한다. 각궁은 전시와 수렵용, 연락과 습사용으로 두가지가 있으며 현재 국궁에서 사용하는 유일한 활이다.
가장 널리 쓰인 각궁과는 달리 아쉽게도 다른 궁들은 오늘날 잘 사용되지 않는다. 다른 궁들은 크게 비전시용과 전시용으로 나눌 수 있다. 비전시용으로 정량궁은 ‘큰활’ 또는 ‘육량궁’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위해 일정한 규격으로 만들어졌으며 보통의 각궁보다 2배 정도 길다. 예궁은 정량궁보다 약간 크며 대궁이라고도 한다. 예궁은 주로 궁중 예식을 위해 사용됐다.
전시용으로 호궁은 전투용 활로 사용됐다.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제작법이 단순하고 제조비용이 저렴했다. 한편 호궁이 각궁과 비교하면 성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일반 병사용 또는 보조 활로 사용됐다. 고궁은 활의 형태가 둥근 고리 모양인 것이 특징이며 ‘동개활’ 또는 ‘고각궁’이라고도 한다. 활을 둥근 형태로 보관할 수 있으므로 휴대가 간편했다. 활과 화살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서 등에 멜 수 있어서 말을 타고 쏘는 기병용 활이었다. 철태궁은 모양과 제조법이 각궁과 비슷하지만, 활의 몸체인 ‘간’만큼은 철재로 만들어졌고, 전시와 수렵에 사용됐다.
종류도 많고 역사도 긴 국궁은 조선시대 말, 총의 등장으로 쇠퇴의 길에 들어선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총의 초기 형태인 화승총은 각궁보다 성능에서 밀렸다. 초기의 총과 비교했을 때 활의 연사속도와 사정거리가 더 우수했다. 따라서 병졸들이 승자총통을 사용할 때, 조선 정예 무관들은 각궁을 사용했다. 그러나 활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며 실용적으로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상당히 길다. 총이 활보다 살상력이 더 뛰어나다. 활에 숙달한 군인보다 총에 숙달한 군인을 양성하는 것이 비용적인 측면에서 더 저렴하다. 각궁을 만드는 데 쓰이는 주요재료인 물소의 뿔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였으며 각궁은 장마철에 쉽게 약해지고 망가진다. 이러한 단점들이 부각되면서 활은 점차 총에 밀리게 된다.
이후 1894년 갑오경장으로 조선군대의 무기체계에서 총을 사용하고 활을 제외하면서 활은 결정적으로 몰락하게 된다. 국궁이 우리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할 때, 고종황제가 국궁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고종황제는 전국적으로 활쏘기 문화가 몰락하고 있다는 소식에 1899년에 “활이 비록 군대의 무기에서는 제외되었다고 해도 국민의 호국정신 함양과 체력증진을 위한 활쏘기는 권장해야 한다”고 공표했다. 고종황제는 자신이 평소에 활을 즐겨 쏘던 경희궁 안 활터에 민간 사정인 ‘황학정’을 건립했다. 이후 고종황제의 활쏘기 권장과 황학정의 건립으로 각지에서 국궁이 다시 살아나게 됐다.
현대의 국궁은 전국 체전과 같은 국내 대회 등이 존재하지만,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마이너 스포츠가 됐다. 특히 아시안 게임, 올림픽 등의 세계대회를 통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양궁과 비교하면 국궁의 입지는 계속 좁아진다. 한편 국궁 관련 관광벤처기업 ‘부리다’처럼 국궁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활쏘기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비록 국궁이 우리의 일상과 멀어졌지만, 활쏘기 정신만은 앞으로도 계승되어 우리나라 활쏘기를 세계에 널리 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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