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전통 문화 사이의 국궁
스포츠와 전통 문화 사이의 국궁
  • 김윤식 기자
  • 승인 2015.09.0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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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활쏘기가 유교에서 말하는 육예 중 하나였기 때문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활쏘기를 즐겼다. 활쏘기는 철저하게 스스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서 쏴야 하므로 궁술을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으로 보았다. 활쏘기는 군사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전인교육으로서 총에게 주 무기의 지위를 넘겨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왔다. 긴 역사 동안 발전해온 국궁의 사법에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면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사상도 담겨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국궁계도 이러한 국궁의 문화적, 교육적 가치를 강조하여 국궁의 대중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궁도(弓道)는 철학적인 부분이 다수 포함되고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용어로 서술되어 있어 혼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활 쏘는 자세를 다루는 궁도문화평생교육원의 ‘사법개론자료’에서는 활쏘기 기본자세의 지지법에서 우주조화이론을 다루고 있으며, 활을 잡는 권법은 음양오행원리에 기초를 두고 설명한다. 동양학이 기초적인 학문이었던 옛날과 달리 현대에 와서 일반인들은 동양적 학문에 접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국궁 자세에 대한 원리를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으로 체계적인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궁은 체력적으로도 상당한 조건을 요구한다. 조선시대 때 궁술은 과거제의 과목으로 궁사들은 최소 80근 이상의 활을 사용했다. 현재 국궁대회에서 쓰이는 과녁까지의 기본거리는 145m인데, 양궁대회에서의 최장거리가 90m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스포츠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국궁의 학문적, 체력적으로 높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일반인들에게는 전통문화 이상의 가치로 인식되기 힘들어졌다. 그 외에도 아래와 같은 이유로 국궁의 대중화는 난항을 겪고 있다.
먼저 현재의 국궁에서 가장 문제로 인식되는 점은 사법이 명확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 대중화의 일환으로 개량궁이 등장하고 목궁이 몰락하자 많은 사람들이 정통 사법인 온깍지 사법을 버리고 반깍지 사법으로 이행했다. 개량궁이 반깍지 사법에 유리하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사법이 불과 30년 만에 바뀌게 된다. 이를 둘러싸고 국궁계에서 사법에 관한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정통 사법을 지키자는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온깍지 사법의 정통성을 부정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 조상들이 온깍지 사법을 이어온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각궁 특유의 ‘버들잎 효과’는 개량궁에서는 볼 수 없다. 적어도 반깍지 사법이 정통사법으로 인정받으려면 온깍지 사법보다 이론 면에서나 실제 면에서 우수한 사법임이 입증되고 그것이 국궁계의 합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반깍지 사법의 우수성을 입증할 방법이 없고, 선조들의 경험으로부터 귀납적으로 생각해 보면 온깍지 사법이 우리의 정통사법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국궁이 교육기반을 체계화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언급된다. 유단자는 일반적으로 인품, 지식, 기예를 갖춘 사람을 일컫고 있으며, 기능과 관련한 품새의 획일성을 통하여 정신적 일체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궁은 표준교육기반의 미비로 인해 통일된 사법에 대한 지식과 기예를 갖추기보다 활을 잡은 시간을 통해 유단의 기량을 평가하게 되고 결국 유단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궁도에 처음 입문한 사람은 통일되지 않은 사법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되는데, 유단자들이 누가 재능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저마다 각기 다른 궁체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도의 표준교육체계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자가 궁도의 방향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표준 사법에 의한 교본으로 가르침 받지 못하고 적중만을 추구하는 수련으로 인해 국궁의 전통 문화적 가치를 인지할 수 없게 되었다.
국궁의 대중화는 활쏘기를 즐기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대중화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대중화는 간편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국궁에서 요구하는 궁도는 결코 간편하지 않다. 대중화를 위해 정통성을 부정한다면 과연 성공한 대중화라고 할 수 있을까? 국궁계에서 궁도를 스포츠와 전통 풍속 중 무엇으로 정할지 갈등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중화가 진행되어 국궁을 프레임 안에 가둬버렸다. 스포츠로 인식하고 접근한 사람들은  궁도의 난해한 내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자칫하면 배우기를 포기하거나, 그저 적중을 중시하는 궁사가 되어 정통 풍속으로서 가치를 무시할 수 있다. 따라서 대중화의 문제는 불편한 전통을 개선하고 어떻게 대중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국궁을 만드느냐 하는 방법의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