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B급 문화
문화 - B급 문화
  • 명수한 기자
  • 승인 2015.09.0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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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로부터 일탈한 비주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세계를 강타했다. 그의 우스꽝스런 춤과 뮤직 비디오에 전 세계 사람들은 열광했고 한국이 어딘지도 모르는 이들조차 한국말 가사를 부르며 말춤에 푹 빠졌다.
혜성같이 등장한 이 노래가 하나의 '현상'으로 떠오르자 'B급 문화의 힘'이라는 수많은 언론과 학계의 진단이 이어졌다. 사실 B급 문화라는 것의 정의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이전에는 그저 싸구려, 저예산 영화를 B급 영화라고 칭하는 바와 같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이 보여준 B급은 이와는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의도된 재미, 싼티의 문화다. 기존의 권위와 관념을 벗어난 유희, 일탈의 문화다. ‘강남스타일’의 영향으로 새로운 B급 문화의 영향을 받은 가요계에선 크레용팝의 ‘빠빠빠’,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등이 탄생했고 이 열풍은 다른 영역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광고계는 김보성의 '으리'와 편강한의원으로 대표되는 B급 광고(10대들은 이를 ‘병맛 광고’라 부르기도 한다)가 대세가 되어 소비자의 큰 호응을 받았다. 영화계 역시 '킹스맨'의 흥행을 통해 B급 영화를 새로운 의미의 B급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SNS와 웹상에서 유행하는 '짤방문화(재미있는 사진을 이용해서 말하고 싶은 상황을 설명하는 것)'는 일탈과 유희를 목적으로 하는 일명 '잉여 짓'을 통한 B급 문화로, B급 문화의 영역 속에 생활 속 소소한 재미를 찾는 잉여의 문화까지도 포함되도록 하였다.
B급 문화의 시초는 1920~1950년대 미국의 B무비로 알려져 있다.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서 한편의 관람료만 받고 본 영화 상영 이전에 영화를 한편 더 상영하는 방법으로 여기서 본 편 A무비에 서비스로 제공되는 영화를 B무비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저예산에 매번 같은 스토리라인으로 출시되어 싸구려로 취급 받았다. 그러나 B무비는 후대의 비평가들에 의해 재평가되었는데 허접한 연출과 싼티나는 스토리들이 고급 예술, 주류 영화의 고전적, 귀족적 취향에 대한 풍자로, 내용 속에 강제로 주입된 주제의식은 기존의 사회 윤리에 대한 조롱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A'와 'B'로서 나타냈던 개념이 한국에서 '급'으로 해석되면서 'B급'이란 저급한 하위문화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고 주류문화에 반발하는 새로운 문화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처럼 싸구려로 시작하여 유희와 일탈의 문화로 거듭난 B급 문화는 우리에게 '망가짐'의 필요성을 알렸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로 가득하였다. 상사의 절대적인 권위는 여러 조직에 뿌리 내렸었고 웃음과 즐거움보다는 오직 생산성과 효율만을 강요하는 '딱딱한 업무환경'이 기업들의 흔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B급 문화가 화두가 되면서 점차 권위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가끔은 재미나고 웃길 수 있는, 그럼으로써 상대방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는 망가진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우리 사회에 퍼졌다. 지금은 대통령이 '멘붕'과 같은 단어를 공식 석상에서 사용하고 직장상사가 쫄쫄이를 입고 부하직원들을 위한 공연을 하며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톡톡 튀는 웃긴 행동으로 즐거움을 주는 모습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흔히 '파격 행보'라고 말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이 진정으로 소통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주춧돌이 되지 않을까. 이러한 행동들이 더 이상 파격이 아닌 일상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 B급 문화가 우리 사회에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B급 문화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B급 문화로 인해 파생되는 ‘병맛’, ‘짤방’ 등과 같은 단어는 한편으로는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의 벽을 더욱 높이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B급 문화를 많은 대중이 향유함에 따라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찌질이’, ‘쌔끈’(섹시하다 라는 뜻)등의 수준 낮은 언어들이 사회 전체의 격을 낮춘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동전도 양면이 있듯이 B급 문화에도 역시 장단점이 존재하는 법이다. 때에 맞는 적절한 활용을 통해 생활 속 웃음을 주는 활력소로 쓰이는 것이 B급 문화의 진정한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