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포항, 이 땅에서 (5): 포항과 6.25 전쟁
문화 - 포항, 이 땅에서 (5): 포항과 6.25 전쟁
  • 김상수 기자
  • 승인 2015.06.03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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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포화 속으로
포항 문화연재가 다루는 시간대가 어느덧 현재와 가까워졌다. 마지막 회를 맞아 다룰 주제는 유물, 유적이라기보다는 역사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 국토가 불바다로 바뀌었던 6.25 전쟁은 포항을 피해가지 않았다. 오히려 포항은 모두가 노리는 최고의 군사적 요충지라 많은 중요 전투가 있었다. 지도상으로 포항은 별다른 섬이 없는 동해에서 툭 튀어 나온 곶으로서, 위로는 부산과 대구를 지키는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했고 옆으로는 방어선을 위한, 공격을 위한 병력의 상륙지점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이틀 만에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과 시민을 버리고 대전으로 피난했을 뿐만 아니라 대전 전선도 밀리고 있었기에 미국은 인천을 통해 병력을 상륙시킬 수 없었다. 결국 미국은 포항을 선택했다. 동해안에 위치한 포항에는 비행장과 상륙이 용이한 긴 해안이 있었고, 대구를 거쳐 대전으로 이어진 철도로 상륙군을 신속히 전선으로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만 해도 2,000대가 넘는 수가 포항을 통해 상륙했고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다.
물론 북한군 역시 남진을 위해 포항을 탐냈다. 때마침 동해안쪽의 방어를 담당하는 제3사단이 포항 북쪽의 영덕 장사동 일대로 전진해 북한군 제5사단과 대치중에 있었다. 북한군은 8월 11일 일부 병력을 포항에 보내 포항여중에 설치된 후방지휘소를 공격했다. 이곳에는 정규군이 없었다. 기껏해야 본부요원, 경찰, 청년방위대와 71명의 학도병들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놀라운 분투를 벌였다. 말이 ‘분투’지 기록을 보면 학도병들은 가진 실탄을 다 쓰고는 실탄이 소모되자 학도병 한 명이 실탄 창고의 문을 부수고 그 안에 남아있는 실탄과 수류탄 약간을 가져와 싸움을 계속했고, 이마저 바닥난 순간 기관총을 난사하는 5대의 적 장갑차를 상대로 수류탄을 받아 던지는 ‘혈투’를 계속했다고 한다. 이 글의 대부분의 독자보다도 어린 학도병들이  적 50~60명을 사살하였다고 하니 이들의 영웅적인 분투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적들의 공격 앞에 학도병 47명이 장렬히 전사하고 포항시 전체가 넘어가고야 말았다.
이렇게 되자 제3사단은 순식간에 고립되고야 말았다. 북한군 제5사단은 끊임없이 제3사단을 압박해왔고, 후방의 포항시는 이미 넘어갔으며, 야간을 이용한 기습에 아군의 진지는 점차적으로 작아졌다. 물론 미군은 지원을 계속했지만 식량조차 충분하게 보급할 수 없었다. 남은 방법은 후퇴뿐이었다.
후퇴는 언제나 어렵다지만 포항 철수 작전은 특히 어려웠다. 이미 포위된 상태에서 한 개 사단 전체를 후퇴시켜야 했다. 후퇴로도 바다뿐이었다. 16일 아침에 철수를 명령하는 통신통을 담은 경비행기가 와 ‘오늘밤 전차상륙선(LST)를 보내니 철수 지점, 기착지점을 알려달라’고 쓴 문서를 놓고 오자 사단장과 참모들 모두 목숨을 건 작전수립에 들어갔다. 결국 결정된 철수지점이 지금의 월포 해수욕장 북쪽 조사리 해안선이다.
도망가는 입장에서 믿을 것은 기만작전뿐이었다. 먼저 각 대대에서 1개 중대씩 적진에 공격을 감행했고 나머지 주력은 해안 집결지로 철수했다. 포병과 박격포는 남아있는 포탄으로 교란사격을 가했고 해안도로에서는 5~6대의 차량을 왕래시켰다. 해안에서 상륙부대가 ‘상륙’하는 듯 꾸민 것이다. 결국 사단 병력 9,000여 명, 경찰대 1,200명, 지방공무원과 노무자 및 피난민 1,000여 명 그리고 차량과 포 등 각종장비까지 모조리 바다로 나갔다. 전쟁에서 가장 비싼 병기는 사람이다. 9000여 명의 사단 병력을 온전히 보존한 이 후퇴는 후에 안강-기계지구 반격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6.25 전쟁의 참사는 끔찍했다. 북한 지도부의 무력통일 야욕으로 개전한 한국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포항 학도병들의 나라 사랑 정신은 정말 끝이 없었다. 정말 애국심만으로 국가를 지켜낸 모든 장병들의 영웅적 분투에 끝없는 감사를 바친다.
그리고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 학도병이 되어 포항여중에서 전사한 이우근 학생의 일기는, 6.25 전쟁을 다른 시각으로 알게 해준다. 처음엔 학도병이 되어 "적과의 싸움만이 내 전부다"라고 의기양양해 하던 학생은 차츰 어머니를 찾으며, "왜 전쟁을 해야 하냐"며 반문한다.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학생으로서 북한군의 끔찍한 공격으로 불타버린 한 청춘에게 애도를 표한다.

* 포항 문화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감수를 맡아 주신 황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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