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미래, 우리대학의 미래, 새 총장께 거는 기대
대학의 미래, 우리대학의 미래, 새 총장께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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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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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약 천 년전 중세의 유럽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지칭하는 라틴어 universitas는 “one community for teachers and students”를 뜻하고, 이러한 의미 속에 포함된바 외부의 간섭에서 자유롭게 배우고 가르친다는 대학의 본질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연구중심대학은 19세기 독일에서 시작되고 2차대전 후 미국의 대학들이 선도하면서 교육의 기능에 지식의 경계 확장까지 추가하였다. 어쨌거나 대학의 본질이 긴 세월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공간적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은 지난 천년의 세월이 인류에게 가져온 커다란 변화와 비교해 볼 때 실로 놀라운 일이다. 대학의 본질 자체가 인류가 어떤 상황에서도 보존해야 할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강건하게 세월을 이겨온 대학도 이제는 극한적인 시장의 힘 앞에서 그 본질 자체에 대한 소명을 요구받고 있다. 최근 기업에 장악된 국내의 대학들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은 압도적인 시장의 힘과 그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보기술의 발전 또한 교육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이고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대학의 본질을 정조준하면서 그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대학은 천 년을 이어온 과거의 역사만으로 천년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일까.
우리대학은 연구중심대학이요, 매우 특수한 과학기술대학이며, 엘리트를 양성하는 대학이다. 이를 반영한 우리대학의 건학이념은 “우리나라와 인류사회 발전에 절실히 필요한 과학과 기술의 심오한 이론과 광범위한 응용방법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소수의 영재들을 모아 질 높은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지식과 지성을 겸비한 국제적 수준의 고급인재를 양성함과 아울러, 산학연 협동의 구체적인 실현을 통하여 연구한 결과를 산업계에 전파함으로써 사회에 봉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로 명시되어 있다. 우리대학의 건학이념의 각 항목을 향하는 시대의 공격은 역시 매섭다. 연구중심대학으로서의 기능은 잘 수행되고 있는가, 과학기술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은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우리가 배출하는 학생들은 국제적 수준의 고급인재인가.
특히 마지막 질문은 대학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에 관한 것으로 우리의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명문대학 중의 하나인 예일대 영문과 교수였던 윌리엄 데레저위츠 박사는 최근 “Excellent sheep” (역서: 공부의 배신)에서 자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최고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길러내고 있는 최악의 인재들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천부의 재능과 부유한 환경 속에서 성공의 길로만 유도되어 온 이 똑똑한 양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감과는 달리 새로운 지식에 대한 어떤 열정도 없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고 남의 뒤를 따르면서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하고 이에 따라 나타나는 불안과 공허감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길러내는 학생들은 이러한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 있을까.
대학에 대한 시대의 요구와 우리대학의 특수성이 불러오는 위기와 기회 속에서 9월 취임하는 새총장께 거는 기대가 또한 작지 않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요하는 반면 연임이 일반적이지 않은 우리의 풍토를 고려할 때 총장의 임기 4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대가 없을 수는 없다. 우리는 지난 사설에서 우리대학의 링반데룽을 지적한 바 있다. 피할 수 없는 링반데룽 속에서도 전진하는 모멘텀을 잃지 않고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 총장께 기대하는 바를 적어본다.
짧은 시간에 대한 부담을 피하면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우리대학이 개교 이후 걸어온 바를 외부인의 시각으로 통찰하고 무엇이 됐든 작은 변화부터 시도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대학 개혁은 대학의 고유한 문화의 맥락 속에서 시도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지난 경험에서 배운 바이다. 이러한 면에서 포스텍의 문화 그 뿌리에는 김호길 박사가 있으며 과거 여러 분의 총장들 중 다수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았던 이가 김호길 박사라는 점을 고려하시기 바란다. 새 총장께서 초대 총장의 경우를 면밀히 연구하고 이해하시면 우리대학의 문화에 안착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링반데룽: 등산에서 짙은 안개 및 폭풍우를 만났을 때나 밤중에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계속 맴도는 일. 2014년 12월호 사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