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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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석현 / 화학13
  • 승인 2015.06.0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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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매우 충격적인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널리 알려진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꾸며낸 질병이라는 것이었다. ADHD라는 질병의 창시자인 레온 아이젠버그 박사는 세상을 떠나기 7개월 전인 2009년 3월에, ADHD는 꾸며낸 질병의 전형으로 제약회사로부터 펀드를 받고 만들어낸 질병이라고 언급했다. 아이젠버그의 양심 고백에도 불구하고 6년이 지난 지금도 ADHD는 우리 사회에서 널리 퍼져있다. 더군다나 아이젠버그 박사는 ADHD를 꾸며낸 질병이라고 말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ADHD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위 사람들을 눈이 빠져라 세세하게 관찰하다 보면 주의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의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ADHD 환자’가 주는 느낌은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전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느낌을 주는 반면에, 후자는 그 느낌을 넘어 정신병의 느낌마저 드는 듯하다.
 별의별 증후군이 참 많다. 많은 학업량 속에서 매일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포스테키안들에게 어울릴만한 번아웃 증후군.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절망감으로 우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이외에도 신데렐라 증후군이니 피터 팬 증후군이니 하며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면 수많은 증후군이 터져 나온다. 과거에 비해 봇물 터지듯 나오는 여러 증후군들은 옛날에 비해 각박해진 현대 사회의 여러 스트레스로 인한 문제점들을 대변해주고 있다. 대중 메체인 TV 프로그램과 인터넷에서는 이러한 증후군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증후군을 접하게 되고 혹시 자기 자신은 ‘정상’적인 상태인지 알아보기 시작한다. 자가 진단표를 구해봐서 혹시 나도 이런 증후군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증후군에 걸렸다면 어떻게 해서 극복할 수 있을지를.
 그런데 너무 많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늘날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붙여진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한 번 더 생각을 이어나가면 오늘날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을 만한 ‘일반적인 특성’과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번아웃 증후군을 살펴보자.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인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증 등에 빠지는 증상’인 번아웃 증후군. 한마디로 말해 슬럼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슬럼프는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또한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일반적인 특성을 교묘하게 ‘증후군’이라는 단어로 바꿈으로써, ‘증후군’에 걸렸다고 사람을 단정 지음으로써 현대 사회의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현대 사회에서 슬럼프를 겪는 사람들은 많고 심리학자들은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ADHD 경우에서처럼 ‘슬럼프’는 잠깐 힘든 시기를 의미하는 느낌이지만, ‘번아웃 증후군’은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심각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자주 이러한 말에 사람들이 노출됨에 따라 혹시 자기는 피로감이 없는지 자주 되묻게 되고, 마치 그러한 증후군에 빠져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된다. 이런 저런 증후군을 볼 때마다 현대 사회는 자기 자신을 옭아매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규정하는 것에 능통하다. 슬럼프라는 증상을 심각해 보이는 증후군으로 둔갑시켜버릴 만큼 말이다. 여러 가지 자연스러운 현상을 병으로 규정시켜버리는 사회에서, 굳이 나의 상황을 매체가 규정하는 여러 병적인 현상에 연결시킬 필요가 없다. 자연스러운 상황을 ‘병’으로 규정짓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보이는 것이고,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증후군 말고도 많다. 보수와 진보,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등등. 현대사회의 우리들은 좀 더 쉽게 무언가를 파악하기 위해 ‘규정짓기’를 하지만, 이러한 규정짓기 때문에 본질을 흐릿하게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어에 의해 규정되는 우리의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을 옭아매는 여러 언어로부터 얽매이지 않고, 또 그런 규정된 언어의 노예가 되지 않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프로그래밍 수업 때, ‘#define'에 거부감을 느낀 이유는 이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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