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이 되어야 할 시점
큰 바위 얼굴이 되어야 할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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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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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중심형 사립대학으로 가장 빠른 기간 내에 세계수준으로 도약한 우리대학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쾌거이며, 박태준 설립이사장과 포스코의 전폭적인 지원 및 교수·직원들의 마음 모은 노력이 결합하여 이뤄낸 결과이다. 그러나 지난 4반세기에 걸친 성공을 발판 삼아 다음 4반세기의 꿈을 얘기해 마땅할 이 시점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자체적 전망은 어두우며, 자칫 가장 빠른 성공이자 동시에 가장 빠른 몰락의 사례로 기록될지 모른다는 자조까지도 있다. 차기 총장이 정해져가는 이 시점에 한 번 자성의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대학의 발전도 내부의 역량과 외적인 요건·지원 그리고 구성원들의 노력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대학에서 교육·연구 등의 생산 활동과 발전의 원동력은 거의 전적으로 교수에게서 나오며, 따라서 대학 발전에는 교수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결집하고 (능력의 제고는 또 다른 이슈임) 대학 구성원 모두가 최고의 노력을 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적인 필요조건이고, 여기에 외적인 지원이 따라준다면 금상첨화가 된다. 우리대학의 초기 15년이 대략 이랬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든 직후 4대 총장 선임 과정에서 총장 부재 1년을 거치면서 재단이 대학 운영에 관여하기 시작하였고, 대학 운영의 기본적 지침부터 하달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교육철학마저도 스스로 세우지 못한 채 재단의 지침을 단순 수행하는 위치로 전락하였다. 급기야 최근에는 대학본부가 교수들을 폄하하고 매도하기까지 하면서, 결국 대학 에너지의 원천인 교수들 대부분이 마음과 입을 닫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노력한 교수직원들 덕분에 대학이 발전하였고 대학의 문제는 항상 총장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왜 이런가. 이제까지 총장 후보 평가의 주된 기준은 포스코로부터의 지원 확보와 약간의 포스코 외적 외부 지원 유치 가능성이었다. 이는 재단만이 아니라 대학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정서이기도 하여, 설립이사장과 재단이사장의 심중에 따라 사람이 정해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계속 줄을 대어 놓는 사람들이란 당연히 우리들을 실망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우리는 그렇게 4명의 총장에게 연달아 실망하고 있는 중이다. 구성원들도 이들을 비난만 할 뿐, 또 다시 같은 바람에서 같은 기준으로 실패가 아닐 총장이 뽑혀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다.
모든 대학이 비슷한데, 외부 지원만 있으면 성공은 저절로 될 것 같지만, 이건 손쉽기는 하지만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으로서, 어찌 보면 대박을 좇는 한탕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외부 지원이 대학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이는 보조적인 수단이지 근본은 아니며, 내부 구성원의 역량을 크게 결집하고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으로 최대한의 능동적 노력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학 발전의 선행조건인데, 지난 12년간 우리는 편향된 잣대로 총장을 정했고, 결국 오늘과 같은 상황을 맞게 되었다. 구세주를 기다렸으나 구세주는 없었으며, 다른 대학의 상황들을 봐도 구세주는 없음이 확실한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스스로 대학의 교육과 운영의 틀을 정하고 시도하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여, 우리들의 내적 역량이 전혀 제고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자신감마저 퇴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애교심을 바탕으로 하는 능동적 참여의식까지 실종되었으니, 이제는 외부 지원이 온다고 해도 다시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진실로 굳건히 우리의 뿌리를 내리고 우리만의 자랑스러운 꽃을 피우려면 무엇보다 먼저, 구세주를 기다리던 이제까지의 허망한 바람을 지우고, 문제와 고통과 해결이 모두 우리 자신의 것임을 받아들인 후, 때로는 힘들고 절망스러울지라도 고난 속에 낙이 있음(苦中樂)을 믿고, 바로 우리의 손으로 우리대학의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올바른 지도자도 접목되지 않을까 싶다.
나대지 않고 겸손히 꿈을 좇았던 어네스트가 결국 스스로 큰 바위 얼굴의 화신이 되었고, 곤마신세였던 장그래가 또 하나의 미생마일 뿐이었던 오상식을 만나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완생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듯, 그런 일들이 여기 우리대학에서 상식이 되면 좋겠다. 주인의식을 북돋우기는커녕 잠재우면서도 왜 주인의식을 갖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만 하는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꿈도 꾸어보지 못할 그런 것을, 구세주 없이도 우리만의 손으로 만들어 볼 수 있게만 된다면, 그 잔이 아무리 쓰다 하여도 우리는 기꺼이 그 잔을 마다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