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 광유전학
학술 - 광유전학
  • 허원도 /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바이오이미징
  • 승인 2015.03.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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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뇌 신경세포를 원격조종하다
영화 토탈 리콜에서는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는 장면이 나와 화제가 됐다. 맨 인 블랙이라는 영화에서도 사람의 기억을 빛으로 지우는 장치가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곧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광(光)유전학’의 발전 덕분이다. 광유전학(optogenetics)이란 광학(optics)과 유전학(genetics)을 결합해 만든 용어로 빛과 유전공학을 이용해 동물의 뇌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채널로돕신’이라는 녹조류의 청색광단백질을 쥐의 신경세포에 발현한 후 빛만으로 신경세포를 활성화하고 이를 이용해 마우스의 행동을 컨트롤했던 스탠퍼드대 칼 다이서로스 교수의 연구에서 시작됐다. 이러한 광유전학의 시초가 2005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된 직후 큰 화제를 모았다. 비로소 ‘리모컨 구실을 하는 빛과 수신기 구실을 하는 채널로돕신’ 시스템을 통해 신경회로를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1,500번 정도 인용됐다. 이러한 연구이전에는 특정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조작하는 방법은 그동안 전기자극이나 약물을 이용해 다양하게 시도돼 왔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원하는 세포 말고 다른 세포에도 작용되는 단점이 있고, 약물은 우리가 원하는 특정 타겟 세포 이외에 다른 세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약물이 혈류를 따라 이동하면 우리 몸 곳곳에 퍼지기 때문에 실제 약물이 치료 부위 이외에 다른 곳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 주입된 약물은 분해되거나 몸 밖으로 배출되기 전에는 계속 잔류하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탓이다. 하지만 빛은 우리가 원하는 부위에 원하는 시간만큼만 빠르고 정확하게 쬘 수 있고, 또 끌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고 빠르게 조절할 수 있다.
‘채널로돕신’은 실험실에서 청색광을 내는 레이저, 청색광 LED등을 이용하여 연구를 할 수 있으며, 아주 낮은 세기의 빛에도 반응하기 때문에 현미경에 부착한 레이저나 LED를 이용하여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며, 살아 있는 마우스의 뇌에는 주로 청색광섬유를 이용한다. 넓은 공간에 청색광을 비추는 방법은 LED를 이용하기도 한다.      

원하는 뇌 신경세포, 빛으로 활성화
우리가 학습하고, 듣고, 보고, 만지는 행동 등을 통해 외부에서 인지된 감각은 전기신호로 바뀌어서 신경세포를 통해 뇌에 전달된다. 이 신경세포는 여러 개의 다발 형태를 띠고 있다. 지하철 노선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 역들이 지하철 노선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는 것처럼 신경세포들도 각자 줄기로 연결돼 있고, 이 줄기들은 또 다른 줄기로 서로 엮여 있다. 이러한 지하철 노선과 같은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을 ‘신경회로’라고 하고 지하철노선이 만나는 역과 같은 신경세포간의 연결부분을 ‘시냅스’라고 한다. 이러한 신경회로와 시냅스의 형성은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기억, 경험, 질병 등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특히 시냅스의 개수와 모양 그리고 크기가 사람의 행동과 생각, 감정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최근 연구하는 광유전학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어떤 질병 상태에 있을 때 어떤 경로의 시냅스가 활성화되는가를 연구하는데 이용되는 새로운 뇌과학 연구 분야이다. 광유전학연구의 예를 들어 보자.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의 시냅스는 a-b-c의 경로를 거친다. 반면, 즐겁고 기쁜 사람의 시냅스는 a-b-d의 경로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의 뇌 속 b-d 경로에 빛을 쏘면 이 경로 속 채널로돕신이 활성화되면서 즐거운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즐거운 사람의 시냅스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울증 환자의 뇌 속에 잠자고 있던 기쁜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시냅스에 빛을 쪼이면 우울증 환자는 정말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채널로돕신’을 이용한 광유전학은 뇌인지과학에서 필수적인 연구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마치 생화학에서 이용되는 웨스턴이나 분자생물학에서 이용되는 PCR과 같은 기술이 되었다. 그래서 ‘채널로돕신’을 이용하여 진행하는 연구는 다른 연구그룹과 경쟁을 피할 수 없으며, 뇌인지과학분야에서 새로운 생물학적 질문을 찾아내기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신경세포의 활성이나 신경회로망을 제어하는 ‘채널로돕신’이라는 단백질이외에 다른 광유전학도구가 필요하게 됐다. 2009년 네이쳐지에 식물광수용단백질을 이용하여 신호전달단백질을 빛으로 제어하고 세포의 모양을 바꾸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들 연구가 발표되면서 세포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단백질을 빛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다.        

국내연구진,
효과적인 원격 세포조정 수용체 개발

최근에는 세포의 기능을 원천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광유도 세포막수용체들이 개발되기도 했다. 연구팀은 신경영양인자수용체 말단에 청색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결합시켜, 빛에 반응할 수 있는 수용체를 만들어 이를 광유도 신경성장인자수용체(OptoTrk)라 명명했다. 이 신기술을 신경세포에 적용해 신경세포의 분화를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빛으로 세포의 모양과 세포의 이동을 원격제어 하는 광활성섬유아세포성장인자수용체1(optoFGFR1) 기술을 개발하였다. 한 번의 빛을 수용체에 조사할 경우, 일시적인 세포내 신호 활성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속적인 빛을 조사하자 세포내 신호 활성은 오랜 시간동안 유지됐다.

원하지 않는 뇌 신경세포,
빛으로 잠재운다.

원하는 부위의 뇌 신경세포 시냅스를 활성화시키는 기술이 있다면, 이와 반대로 억제시키고 싶은 뇌 신경세포의 시냅스를 가두는 방법도 필요하다. 이 방법은 바로 ‘광유도 분자올가미 (LARIAT; Light-Activated Reversible Inhibition by Assembled Trap)’ 기술이다. 이 기술은 세포에 빛을 쬐었을 때 세포 안에 순간적으로 단백질의 복합체인 올가미가 형성돼 이 올가미로 하여금 신경세포가 움직이지 못하게 가두는 것이다. 연구팀은 하나의 세포 안에서 수 마이크로미터(10~6m) 정도의 매우 작은 부위에만 빛을 쬐어 주었을 때, 그 부분에서만 매우 빠르고 특이적으로 단백질의 기능이 저해되었다가 빛을 꺼주면 저해된 효과가 금방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세포가 분열하고 성장, 이동할 때 관여하는 다양한 신경세포들의 기능을 가둬 손쉽게 원하는 신경세포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게 됐다. 그 동안 여러 가지 광유전학 기술들이 개발됐지만, 대부분의 기술은 특정 단백질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단백질 저해 기술에 대해서는 개발이 돼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광유도 올가미 기술은 광유전학 연구 분야에 있어 획기적인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 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이자 생화학 연구방법 분야 세계 최고권위의 저널인 네이처 메소드(Nature Methods, IF 23.565) 6월호에 발표됐다.
채널로돕신을 이용한 광유전학 기술은 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신경세포들의 기능과 새로운 신경회로를 밝히는데 최상의 기술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울증이나 치매 등과 같이 정신질환에 의해 퇴화된 신경세포를 근본적으로 되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 국내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광유전학 기술은 신경세포 활성뿐만 아니라 신경세포의 성장, 분화를 빛으로 직접적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치매, 우울증, 그리고 파킨슨병 등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도 가능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