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슬픈 문화, 갑질
사회 - 슬픈 문화, 갑질
  • 김상수 기자
  • 승인 2015.03.04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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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우습게 들려?”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갑’이라는 단어만큼은 분명히 사라지고 있다. 계약서에서 자주 보이던 ‘갑과 을’이라는 단어는 ‘구매자와 계약자’ 등으로 조금 길게 바뀌는 추세라고 한다. (물론 법에서 사용하는 예시로서의 갑과 을은 대체가 여의치 않기에 여전하다) ‘갑과 을’이라는 명칭은 현대백화점과 같은 대기업의 구매 계약서에서도, 고용노동부의 표준 근로계약서에서도, 서울시의 모든 행정 문서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왜 갑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있을까. 명확하다. ‘갑질’ 때문이다. 사실 갑질이라는 단어는 최근에 유명해진 단어다. 2013년 4월 포스코에너지에 다니던 한 상무는 대한항공 여객기를 타고 출장을 가던 중 탑승하자마자 ‘옆자리가 비어있지 않다’라며 불평과 욕설을 시작했고, 이후 ‘내부 공기를 2분에서 1분마다 순환하라’, ‘비행기 내부 온도를 24도에서 23도로 낮추라’ 등의 억지를 폈으며, 두 번째 식사 시간에는 ‘날 무시한다’라며 승무원의 눈을 책모서리로 때렸다. 이로 인해 사회 저변에 깔려 있던 갑의 횡포 문제를 ‘갑질’이라는 한 단어로 승화시켰다. 동시에 포스코의 회사 이미지는 그만큼 실추되었다.
‘갑질’이라는 단어 덕분에 다른 비슷한 사건들도 대중의 분노를 쉽게 샀다. 같은 해 남양유업의 영업사원은 대리점주에게 “물건 못 받는다는 소리하지 말고 알아서 해. 죽여버린다. 씨X” 등등의 욕설을 내뱉었다. 소비자들을 화나게 한 점은 이런 제품 밀어내기가 기업 차원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초과생산량을 대리점에 떠넘기고 기피 품목은 본사가 나서서 전산조작으로 주문량을 할당했다. 은폐를 위해 최초 대리점의 주문기록까지 삭제했다. 그것도 모자라 피해 업주들을 와해시키기 위해 어용단체를 만들고 점주들에게 가입을 강요했으며, 확정된 과징금은 겨우 5억이었다. 기업적 ‘갑질’ 앞에 소비자들은 불신으로 답했다. 2013년 남양유업의 영업손실은 174억 5,000만 원으로 2012년 영업이익 637억 3,000만 원과 대비해 큰 폭으로 적자 전환했다.
‘갑질’은 점점 범위를 넓혀간다. 퍼스트 클래스에 탄 한진그룹의 장녀인 조현아 前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여성 객실승무원이 견과류 간식을 제공하자, 조현아 씨는 ‘접시에 담지 않고 간식을 제공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는 내용으로 승무원을 질책했고, 중간관리직에 있는 박창진 사무장을 호출해 함께 질책했다. 이 질책이라 함은 해당 승무원과 사무장을 무릎 꿇리고 서비스 지침서 케이스 모서리로 사무장의 손등을 찌르고 결국 사무장이 태블릿 PC를 통해 승객 응대 매뉴얼을 보여주자 비행기 이륙을 멈추고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한 행동을 의미한다. 소위 ‘땅콩회항’은 여기에 기업 차원에서의 증거 인멸, 감옥 접견실 독점 등 ‘갑질’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갑질’은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오히려 ‘갑질’이 너무 쉽게 쓰이는 단어가 되어 악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너는 내 아래이므로, 명령을 따라야 한다’라는 생각이 너무 심한 나머지 인간적으로는 할 수 없는 선을 넘고 이런 행동이 대중에게 알려질 경우, 댓글에는 어김없이 ‘갑질’이라는 지적이 높은 공감을 얻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 물론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만 하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경우가 ‘갑질’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을이자 갑이다. 즉 ‘갑질’은 강자와 약자를 양분하는 기준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어느덧 사회적 문제를 함축해 보여주는 단어가 된 ‘갑질’은 우리의 공분을 일으키며, 혹시 나 역시도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잃고 있는지 차갑게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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