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의 미래, 향후 10년에 달렸다
우리대학의 미래, 향후 10년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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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0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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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속에서 등산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가 ‘링반데룽’이다. 링반데룽은 자신은 앞으로 나아간다고 열심히 걸어가는데 사실은 똑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환상방황(環狀彷徨) 현상을 말한다.? 우리대학은 지난 20여 년간 다섯 명의 단임 총장을 거치면서 링반데룽을 계속하여 온 것 같다. 새 총장의 임기가 시작되면 과거의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새로운 비전과 개혁 방안을 담은 계획을 만드는데, 이를 실행하려 하면 어느덧 임기 만료가 다가와 있다. 다시 새로운 총장 체제가 들어서고 같은 절차가 반복된다.링반데룽만으로 무에서 출발한 신생 대학 포스텍이 세계 28위의 대학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우리대학의 발전에는 10년이 채 안 되는 초대 총장 김호길 박사 재임기간 동안 축적된 모멘텀이 그 바탕에 있다. 이 모멘텀의 실체는 80년대 당시로는 새로운 개념인 ‘연구중심대학’을 내세우고 좋은 인재를 찾아 세계를 누비고 다닌 열정과 이에 반응하여 모인 젊은 교수들, 이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던 소통의 리더십 등이다. 우리가 비록 링반데룽을 해왔지만 이 링반데룽은 초기에 만들어진 모멘텀 위에 놓여 있어서 환상방황이 아닌 나선형 운동을 해왔다고 본다. 이제 개교 30년을 바라보는 우리대학은 중대한 전환의 고비에 와 있다. 270여 명의 교수 중 5년 내에 1/3이 은퇴하고 이후 다시 5년 내에 은퇴하는 교수의 수도 1/3에 가깝다. 따라서 향후 10년 동안 교원의 2/3 정도가 교체되는 우리대학은 30년 만에 돌아오는 재도약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개인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겠으나, 이는 백의 하나 둘의 경우일 뿐이다. 따라서 300여 명의 개인이 모인 조직의 개혁은 오직 인적 혁신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조직의 개혁은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포스텍은 인적 혁신과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10년을 앞두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기대와 희망이 크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현재 후임 총장을 찾고 있고 새 총장과 함께 다가오는 10년을 맞이할 수 있으니 더욱 희망적이다.무엇보다도 다가오는 10년은 초기의 그 10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대학이 성공하고, 우리대학의 성공은 김호길 총장이 항상 강조하셨던 대로 국가와 국민이 성공하는 길이다. 현재의 우리가 개교 당시로 돌아간다면 시대와 환경이 너무나도 달라졌음에 놀라겠으나, 초기의 정신만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서 데자뷰를 느낄 수 있다면 포스텍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겠다. 포스텍 정신은 비록 명시적으로 선포된 적은 없으나 초기의 10년 동안 대학에 충만하였던 정신이고 김호길 총장이 몸소 실천해 보였던 정신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의성, 기존의 통념에 맞서는 도전정신, 학생들의 인성과 복지를 중요시하는 사랑의 정신,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와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공공의 정신이 핵심이다. 새 총장은 우리대학의 건학이념을 꿰뚫고 있는 이 정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동의가 있어야 하고, 이를 몸소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콘텐츠는 그 다음이다. 우리대학에는 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있어서 콘텐츠는 쉽게 채울 수 있다. 또한 새 총장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작금의 시대정신은 ‘소통과 배려’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이고 모든 조직의 위기도 마찬가지이다. 재단은 향후 10년 동안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여야 한다. 현재 각 과에서 마련하고 있는 발전계획은 대부분이 보수적인 것들이다. 새로운 총장과 함께 시작될 새로운 10년을 위한 계획은 더 공격적이어야 하고 포스텍의 초기처럼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19세기 말 미국 동부에 전통의 명문대학들이 이미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때, 결코 학문의 중심이라 할 수 없던 중부에서 후발 주자로 출발하여 그들의 강점 분야에서 맞서서 대등한 명문으로 성장한 시카고대학의 초대 총장 하퍼 박사가 한 말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용하다: The question before us is how to become one in spirit, not necessarily in opin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