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과 표현의 이중주
재현과 표현의 이중주
  • 박상준(인문학부) 교수
  • 승인 2014.12.03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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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포스테키안에게 권하는 소설 (6) 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
해방 직후 혼란기의 충청도 이리 기차역, 열네 살 소년과 아홉 살 누이가 매일같이 나와 아버지를 찾고 있다. 만주에 살다가 해방을 맞아 내려왔다는 이 오누이는, 농사일을 찾아 막연히 목포행 표를 구한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기차를 탔다가 대전역에서 그만 둘만 남게 되었다. 어머니와 막내 동생은 만주에서 나올 때 사고로 죽었고, 배다른 형은 그 전에 집을 나가고 없는지라, 갈데없이 고아가 된 터이다. 역전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기 한 달, 기차 안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이 모아 준 돈도 다 떨어지고 해서, 마침내 오빠 영호는 여관의 ‘끌이꾼’으로 동생 영자는 다른 집의 애보기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네 달이 흘러 영호가 동생과 함께 살 방을 구하고자 마음을 먹는 것으로 이야기가 종결된다. <태평천하>와 <탁류>로 유명한 채만식의 유고작 <소년은 자란다>(1949년 탈고, 1972년 발표)의 개요이다. 물론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를 잡아 두자면 좀 더 많은 사항이 부각된다. 아버지 오 서방의 내력과, 영호 남매의 친모인 둘째 부인의 내력 및 오 서방과의 만남이며 이들이 만주로 떠나게 되는 사정, 힘들게 생활터전을 잡아가는 만주에서의 생활, 해방 소식에 술렁이는 만주의 한인들과 귀국 여정의 고난, 전재민들이 들끓고 계층 간 격차가 극에 달한 혼란한 서울에서의 생활, 오 서방이 믿고 의지하던 오 선생의 구금 등 파란만장한 사건들이 오 서방과 남매의 호남행 이전의 이야기를 이룬다. 절절이 애달픈 영호 남매의 고난 이야기가 여기 이어져 <소년은 자란다>의 전체 스토리가 완성된다. 이러한 스토리는 두 가지를 재현해 준다. 외세의 힘으로 갑자기 얻어진 해방이 해외의 하층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 뜬금없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해방이 곧 독립이 되지는 못하는 시대 상황의 요지경이다. 일제가 물러간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군정하에서 기존의 질서가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어, ‘사리에 어그러지는 짓’이나 ‘멀쩡한 도적질’로 돈을 취하는 모리배에 불과한 것들이 ‘훌륭한 사람들의 세계’를 이루고, 그들이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제 맘대로 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요지경의 실상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적절히 그려낸 것이 <소년은 자란다>가 갖는 현실 재현상의 성취이다. 여기서 그쳤다면 대단히 암울하거나 현실 비판적인 소설로 남았을 터인데, 사정은 그렇지 않다. 여관의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도 글을 배우려는 뜻을 굽히지 않고 노력하는 한편 어린 동생을 제가 돌봐야 한다는 일념을 굳게 지키고 있는 영호가, ‘훌륭해 보이면서도 실상은 아무것도 훌륭할 것이 없는 세상’ 속에서 ‘훌륭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는 삼감이 있어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작품의 말미에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반부에 보이는 오 선생의 언행이나, 기차 안과 이리 역 주변의 민초들이 베푸는 온정 등과 더불어 영호가 보이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서, <소년은 자란다>는 복마전과 같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넘어설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는바 미래세대에 대한 이러한 신뢰로 해서 이 소설의 정조는 현실 비판보다는 미래 전망에, 어둠보다는 밝음에 가깝게 되었다. 해방기 현실에 대한 재현과 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바람의 표현, 이 두 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결과로, <소년은 자란다>는 어느 시대에나 읽힐 수 있는 생명력을 확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