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과 무단횡단
포스테키안과 무단횡단
  • 이도엽 / 산경 11
  • 승인 2014.12.0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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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포스테키안의 발걸음은 기숙사에서 도서관을 향한다. 기숙사에서 출발해 도서관에 가기 위해서는 지곡회관을 지나 보이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큰 도로를 건너야 한다. 오르막길을 지나 도서관 입구에 도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도로를 건너 편 가까이에 위치한 경사가 없는 통로를 지나는 법, 둘째는 오르막길을 끝까지 올라간 후 횡단보도를 건너 있는 가파른 경사의 통로를 지나는 법, 셋째는 오르막길을 끝까지 올라간 후 보이는 굴다리를 이용하는 법이다. 기숙사에서 출발했을 때 도서관 입구와 연결된 굴다리를 이용하기에는 너무 멀리 돌아가는 길이며, 횡단보도를 건너 있는 두 번째 통로는 가파른 경사 때문에 이용하기 불편하다. 그래서 도서관에 걸어가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도로를 가로질러 가까이 위치한 첫 번째 통로를 통해 도서관에 향하며, 스쿠터 또는 자전거를 탄 학생들은 조금 멀더라도 오르막길을 끝까지 오른 후 횡단보도를 지나 경사가 급한 통로를 이용한다. 오히려 급한 경사의 내리막길은 스쿠터나 자전거를 탄 학생에게 편리하기 때문이다.이번 학기가 시작될 무렵, 포스테키안들에게 익숙한 이 길 주변에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포스테키안은 무단횡단을 하지 않습니다.” 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도로 이곳저곳에 새로 부착된 것이다. 처음 이 현수막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매우 불편한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으며, 아직도 볼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 학교 캠퍼스는 다른 어느 학교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캠퍼스이고, 도서관 가는 길 주변은 특히 계절에 따라 꽃과 단풍들이 어우러지는 멋진 곳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경관에 어우러지지 않는 무단횡단 캠페인 현수막은 내게 불청객이었고 눈엣가시처럼 느껴졌다. 현수막이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걸어서 도서관에 가는 대부분의 학생이 빠른 길을 위해 건너야 하는 큰 도로를 무단횡단하기 때문이다. 기숙사에서 출발하여 도서관에 갈 때, 횡단보도는 반대방향인 동문 주변과 오르막길을 끝까지 오른 후에 자리 잡고 있다. 즉, 빠르게 도서관에 가기 위해서는 무단횡단을 해야만 한다. 학교 구조상 빠르게 도서관을 가기 위해서는, 무단 횡단이 불가피하다는 합리화를 통해 대부분의 학생은 그동안 죄의식 없이 무단횡단을 해왔다.무단횡단 현수막을 보고 불편한 느낌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이전 학기에 포비스 자유게시판 등에서 무단횡단에 관한 논의가 이뤄진 적이 있고, 학교 차원에서도 무단횡단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학생들에게 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런 구두적인 방법은 무단횡단을 줄이는 데 효과가 없었고, 그 결과 학교에서도 큰 현수막을 도로변에 부착하는 방법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현수막은 주변 캠퍼스 환경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고, 담겨있는 메시지 또한 일방향적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유치원도 아닌 지성의 요람이라 불리는 대학에서 그런 현수막을 보게 되어 나 자신에게 너무 부끄러웠다. 이곳이 진정 상위 1% 대한민국 이공계 인재들이 모여 있는 대학이 맞느냐는 의문과 나 또한 아무런 생각 없이 기본적인 규칙도 지키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무단 횡단의 위험성과 횡단보도의 이용에 관하여는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정으로부터, 학교로부터 교육받는다. 도로교통법 상, 무단횡단은 범칙금 2만원을 부과하는 위법행위이다. 캠퍼스 내 도로는 대학의 사유지로 구분되어 도로교통법이 적용되지 않지만, 범칙금 때문이 아니더라도 무단 횡단을 하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이다. 우리 포스테키안들은 세계를 선도할 과학 기술 글로벌 리더가 될 인재이다. 무단횡단 현수막을 보며, 글로벌 리더가 될 인재가 누구나 지켜야 할 작은 규칙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혹자는 차가 다니지 않는 동안은 오히려 도로를 건너지 않는 것이 비효율적인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안전에 있어, 상황에 따라 규칙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보다 비효율적이더라도 기본적인 규칙을 모든 상황에서 지켜가며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도 힘들고, 모호한 판단 기준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분배 문제와 직결된다. 안전은 조금 멍청하더라도 비효율적인 것이 효과적이다.현수막이 부착된 지 3달 정도 지난 요즘, 도서관 가는 길을 보면 나를 포함한 많은 포스테키안들이 대부분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횡단보도를 이용한다. 하지만 아직은 도서관 가는 길에 부착된 현수막과 주변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사람이 없거나 급할 때는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것이 익숙해진다면 지금보다 상황은 훨씬 나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1분 빨리 가는 즐거움보다 모두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부터 마땅하게 지키는 자부심이 낫다고 생각하는 포스테키안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희망이 생기며 자랑스럽다. 그리고 나 또한 앞으로 사소하지만, 기본적인 것부터 잘 지키는 포스테키안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가슴 속에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하루빨리 포스테키안은 무단횡단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이 없는 도서관 가는 길,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없는 도서관 가는 길의 모습을 보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