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나를 헤치는 독
내가 만든, 나를 헤치는 독
  • 김현호 기자
  • 승인 2014.11.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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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다 , 갇히다, 중독 속으로
내가 술은 좋아하는데, 중독은 아니야!” 주변에 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자주 들었을 말 중 하나다. 혹시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술’을 ‘게임’으로 바꾼 대사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중독’은 우리 주변에 흔하지만, 극도로 꺼리는 단어 중 하나다. 중독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뉴스에서는 알코올 중독이나 게임 중독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중독은 무엇이며, 어떤 피해를 줄까?
먼저, 중독이 정의되기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첫 번째로 ‘갈망’이 있다. 갈망이란 글자 그대로 간절히 바란다는 뜻이다. 그 갈망을 주체할 수 없어서 도를 넘어설 경우, 명백히 중독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요소는 바로 ‘내성’이다. 알코올 중독을 예로 들면 점차 견딜 수 있는 술의 양이 증가하는 것을 내성이라고 한다. 즉, 마실수록 술이 세지는 것이다. 세 번째 요소는 ‘금단증상’이다. ‘금단’이란 일정 기간 일정 약물을 지속해서 섭취하던 사람이 갑자기 중단한 경우에 발생하는 일련의 증상들을 말한다. 식은땀이 나거나, 손을 떨고 불안해지고, 일시적인 환각을 보이고 심각한 경우에는 의식을 잃고 간질 발작과 함께 호흡이 마비되어 사망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업무상이나 인간 관계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트러블이 일어나는 것 역시, 네 번째 요소로 볼 수 있다. 즉, 중독이란 이처럼 △갈망 △내성 △금단증상 △사회적ㆍ직업적 장애의 네 가지 요소가 모두 갖춰졌을 때로 정의할 수 있다.
과거에는 중독이라는 단어가 술이나 마약, 담배와 같은 물질 중독만을 얘기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물질뿐만 아니라 특정 행동에도 중독될 수 있다고 본다. 인터넷 중독, 스마트폰 중독, 쇼핑 중독 등이 그 예다. 이러한 행위중독으로 인해, 실제로 2013년 5월에 발표된 미국 진단통계편람 5판(DSM-Ⅴ)을 보면 이전에 사용됐던 ‘물질 남용과 의존(substance abuse and dependence)’이란 분류를 삭제하고 대신, ‘중독과 관련 질환(addiction and related disease)’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물질중독과 도박이라는 행위중독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논의하고 있다.
중독은 특정 행동과 연관이 있는 만큼, 뇌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는 1950년대 초 신경과학자 올즈(Olds)와 밀너(Milner)의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실험용 상자 안에 쥐를 넣어두고 쥐가 스스로 지렛대를 누를 때마다 머리에 전기 자극을 받도록 장치를 설치하여 실험했다. 이때, 각 쥐마다 뇌에 자극이 가해지는 부위를 다르게 했다. 그러자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한 쥐가 혼자 스스로 전기 스위치를 천 번이 넘게 누르는 것이었다. 연구진들은 이 곳이 바로 쾌감을 느끼는 특별한 부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부위를 ‘쾌락중추’ 또는 ‘보상중추’라 부른다. 이 부위는 중뇌에 위치한 복측피개영역에서 전뇌 부분의 내측전전두엽과 중격측좌핵 등으로 연결되는 신경회로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경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했을 때, 뇌는 중독에 빠지지 않는다.
이처럼 쾌락중추는 단독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여러 신경회로망으로 구성되어있다. 전두엽은 행동의 실행 및 통제기능을 담당한다. 또한, 중독과 깊은 연관이 있는 ‘습관’은 보상회로에서 오는 쾌락을 느끼고 그 쾌락을 갈망하여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외에도 기저핵 등이 중독에 관여한다. 이러한 여러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뇌는 중독에 빠져버린다.
앞서 말한 여러 요소들 중, 전두엽은 의사결정에 있어서 최고 상위 기관으로 중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배외측, 안와, 내측으로 나뉜다. 배외측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으로, 목적 지향적 활동을 기획하고 작업기억을 작동시킨다. 이는 게임이나 도박에서는 이전에 게임에서 이겼거나 돈을 땄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안와는 정상적으로는 결과를 예측하면서 적절한 동기에 부합되는 목적 지향적 행동을 관장하며, 목적에 부합되는 행동을 결정한다. 또한 보상(reward)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내고 유지함으로써 ‘행동의 강화(reinforcement)’를 형성한다. 끝으로 내측은 감시의 역할을 한다. 만약 이 부분의 감시 역할이 약화되면 통제 불능의 문제 행동이 생겨나게 된다. 이외에도 전두엽이 아닌 속뇌의 일부인 선조체는 습관을 형성하고 특정 행위를 하는 데 동기를 부여하며, 이전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는 습관 형성과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은 뇌의 요소가 균형적으로 작동해야 사람은 중독에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균형이 파괴되면 행동의 적절성 또한 깨어져서 과도한 집착과 몰입으로 특정 행동에 편중하게 된다. 이로 인해 중독이 발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