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와 미워하기
사랑하기와 미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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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1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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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기준들 모두를, 혹은 대부분을 만족시키는 사람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그럴 만큼 훌륭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 대신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매우 쉽다. 내가 싫어하는 기준들 중에서 한두 가지만 만족시키면 그는 미워할 충분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가 어려울수록 미워하기는 쉬워진다.
사랑의 필요조건들이 많을수록 사랑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따지고 분별하고 평가할수록 거기 사랑과 포용이 있기는 더욱 불가능하다. 사랑은 따지는 것과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미움의 가능성은 조건들이 늘어날수록 커지게 된다. 늘어나는 조건들에서 누군가가 벗어나는 확률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사이는 멀어지고 힘들어진다.
사랑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더욱 많은 조건들이 생기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매우 쉽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나, 갈수록 늘어나는 조건으로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 반대로 미움은 애초에 우리에게 어려운 것이었으나, 우리의 분별과 판단이 늘어나고 높아짐에 따라서 점점 쉬운 일로 바뀌어 온 것이다. 애초의 쉬웠던 것과 어려웠던 것이 서로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예수가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 것은, 이런 저런 조건과 기준들을 적용해서, 거기에 부합되면 누군가를 사랑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저 사랑함’이다. 우리가 살아갈수록 삶에서 줄어드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조건없는 사랑이다. 뭔가 서로에게 득이 되거나 통하거나 혹은 최소한의 명분이 있어야 비로소 사랑이나 그 비슷한 것을 주고 받게 된다.
사랑의 기회와 가능성이 줄어드는 대신에 미움의 확률은 자동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미워하게 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법과 규제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한도를 초과하게 되면 모두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의 근원에는 단순한 한 가지 요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믿지 못함’이다. 불신에서 룰과 기준들이 나타나고, 이들을 적용하는 분별과 판단이 시작되고, 결국 거기 사랑의 빛보다 미움의 어둠이 더 크게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감독하기 시작하면, 거기 더 이상의 희망과 발전 가능성은 사라지게 된다. 전체의 효율을 높이고 퍼포먼스를 향상시킨다는 목적하에서 모든 것들을 정해진 기준들에 의해서 따지고 분석하고 그에 따라서 결정하면, 결국 그 조직 내에서 남는 것은 규칙에 따라서 움직이기만 하는 무감정한 로봇과 같은 사람들이다. 인간미가 사라진 곳에서 단순히 효율과 성과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곳을 ‘공장’(Factory)이라고 부르는데, 누구도 이러한 공장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공장 대신에 우리가 살아가기를 원하는 곳은 바로 ‘공동체’(Community)이다. 공동체는 같은 비전과 목표와 꿈을 나누는 사람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규율과 규정 대신에 이 곳을 움직이는 밑바탕의 힘은 바로 믿음과 존중이다. 서로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대신에 서로가 서로의 후원자이자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자신의 것을 지키고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것을 나누고 공유함으로써 더 큰 기회를 만들고,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고자 한다.
공동체는 사랑과 믿음에서 만들어지고, 공장은 미움과 불신에서 탄생한다. 대학이 공동체가 되는가 또는 공장이 되는가는 결국 그 내면에 어떤 가치가 자리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우리대학의 출발점에는 분명하게 공동체로서의 가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그 동안 많은 훌륭한 교수들, 직원들, 학생들이 한 곳에 모여들게 되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이 애초의 공동체로서의 가치, 즉 사랑과 믿음은 영구히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야만 한다.
계절은 어김없이 캠퍼스에 아름다운 낙엽과 쌀쌀한 바람을 선물하고 있다. 곧 겨울이 캠퍼스를 차갑게 식히겠지만, 이곳의 모두에게는 따스한 사랑이 다시 피어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