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종관계를 초월한 연대의 꿈
주종관계를 초월한 연대의 꿈
  • 노연숙 / 인문 대우조교수
  • 승인 2014.11.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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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포스테키안에게 권하는 소설 (4)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
제주도의 월정리 해변가에는 오후 여섯 시면 문을 닫는 카페가 있다. 그날도 아쉽지만 늦은 방문 탓에 커피를 마실 수 없었다. 여행의 묘미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있는 듯, 여행길에 오른 순간 그토록 철저하게 짰던 계획들은 말없이 틀어지고 만다. 주인은 그저 웃으면서 영업이 끝났다는 말 대신에 ‘행복하십시오’라는 말을 한다. 카페 바깥으로 나와 아쉬운 마음에 서성거리다가, 문득 문패처럼 써놓은 문구를 보았다. ‘진실은 가라앉지 않는다.’ 노란리본 대신에 배의 그림과 함께 새겨놓은 글귀였다. 개인적으로 지친 심사를 달래고자 찾은 여행길에서, 더욱 고민해야 할 난제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비단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다. 윤일병의 사망에 얽힌 사연만도 아니고, 어느 여군의 죽음의 배후에 놓인 일만이 아니며, 여기저기서 거론되지 못한 채 지금도 숨죽이고 있는 그 누군가의 일만이 아니다. 진실은 어느 순간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누가 무책임했고, 부조리 했는지를. 무엇보다 동 시대의 인간들이 얼마나 파렴치하고 치졸해질 수 있는지를. 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매체를 통해, 모종의 공모 속에 반윤리적인 행태가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으며, 비겁한 자들이 속이 빤히 보이는 변명을 통해 위기를 회피하려 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또한, 그러한 반윤리적 행태와 비겁한 자들의 변명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고통 받는 이들의 수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음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저 볼 뿐이다. 그들이 될 수는 없으므로 그렇다. 위로와 애도를 할 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는 너무도 일상이 되어버린 애도의 시대에 갇혀있음을 깨닫는다. 그저 고통을 고통으로 감수하고 또 떠나보내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망각되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무엇보다 매번 또 다른 일들이 생겨나기에 어느덧 무감각해져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일정한 시점에서 멈추어 우리가 그들이 되어볼 수 있을까? 그들의 기억을 조금이나마 더 깊이 공유하고 가슴에 새겨, 고통 받은 이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연대를 통해 어제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여기 이러한 의문을 되짚어 보게 해 주는 책 한 권이 있다.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이다. 이 작품은 주인과 노예가 서로의 운명을 뒤바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끝없는 탐구열로 지식을 갈구하는 오스만 제국의 현자인 호자는 으레 주인들이 지닌 권위와 우월감이 없다. 베네치아의 학자인 ‘나’ 또한 노예이지만 비굴함과 아부 근성이 없다. 이들은 주종이 아닌 관계에 역점을 두고 대등한 인간관계를 연출한다. 이는 다름보다 같음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호자는 신으로부터 선택 받은 이슬람 교인으로서 위신을 내심 내세워보지만, 탐구에 대한 열망으로 말미암아, 풀리지 않는 문제로 끙끙대는 인간적인 면모를 ‘나’에게 들키고 만다. 가령 흑사병이 돌 때 죄인들만이 전염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를 곤혹스럽게 하지만, 그가 풀지 못하는 숙제들-천문학의 이론이나 무기의 제조법-로 화를 내가며 밤을 새곤 한다. 호자는 매번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의 지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나는 왜 나인가’하는 문제를 두고 서로를 들여다보기에 이른다. 한 방에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채, 내가 누구인지를 낱낱이 기술하고 그것을 읽고 질책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여러 기억들로 나열된 이들 이야기의 공통점은 그들이 홀로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늘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 놓여있다. 이 두 사람도 서로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호자와 ‘나’는 최신 무기를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성’의 정복에 실패하고 만다. 그 결과 이교도인 ‘나’의 신변이 위협받자, 호자는 마치 여행을 가듯이 ‘나’가 되어 떠나고자 한다. 이들은 오래 전에 약속한 듯이 암묵적인 연대를 통해 서로의 옷을 바꾸어 입는다. 이는 왕자와 거지의 이야기처럼 신분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두 사람간의 기억을 완전히 뒤바꾸는 일이다. 상대의 기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 기억을 가진 자가 실로 존재했던 자가 된다. 호자는 말없이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넘겨준다. ‘나’ 또한 호자에게 ‘진짜의 나’가 될 수 있는 진실한 모든 기억을 전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에서 이들은 모든 것을 서로 공개하면서도 끝내 독자에게만큼은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시선에서 기술된 이야기는 그와 함께 했던 호자의 이야기이며,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나’가 호자라는 것이다. 이로써 이들은 주종관계를 초월한 연대의 꿈을 이룬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것은 타인의 삶 속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다. 진정한 상생을 위해 타인의 삶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