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오.
내 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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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0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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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환풍구가 무너져 여러 사람이 아까운 목숨을 잃은 판교 공연장 사고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권의 이전투구로 시간만 보냈지, 안전 불감증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이 사고에 대해 안전 요원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은 주최측을 탓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컸고, 총리와 해당 지자체장이 수행하던 일정을 접고 달려와 자세를 낮추는 모습도 다시 보여주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시각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제시하는 의견도 커진 것 같다. 행사 진행자가 공연 시작 전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이라고 말하며 환풍구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내려오라고 했지만 아무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권력도 없는 안전 요원들이 배치되어 ‘좋은 자리’를 차지한 관람객들에게 ‘그곳은 위험하니 내려오세요’ 하고 권했으면 순순히 내려왔을까? 우리가 요즘 흔히 접하는 공권력의 질서 통제 과정에서 일어나는 승강이를 떠올려 보면 답은 아무래도 ‘아니올시다’가 맞을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이러한 일에 대해 ‘내 탓이오’라는 목소리보다는 행사 주관자의 잘못이고, 정부의 잘못이라는 목소리만 컸던 것 같다. 이와 유사한 문제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주차장을 놔두고 건물 주위에 불법 주차가 넘쳐난다. 교내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우선 일단 정지를 하는 자동차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주차 시설을 충분히 안 만든다는 불만, 횡단보도 앞에 만들어 놓은 고속 방지턱이 높다는 불만들은 교내 게시판에서 흔히 눈에 띈다.
최근 총장의 연임에 대해 대학 내의 다양한 의견들이 게시판을 달구고 있다. 총장의 업무 실적에 대한 비판 중에 연구비가 줄어들었다, 랭킹이 떨어졌다 등의 의견도 들어있다. 연구비가 실제로 줄었는지, 랭킹이 실제로 떨어진 것이 맞는지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이러한 대학의 성과 지표에 대해 대학 운영의 최고책임자인 총장이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맞겠지만, 연구 과제를 수주하는 연구책임자 및 연구원들이나, 대학의 우수성의 여러 축을 나누어 책임지고 있는 구성원들이 ‘내 탓이오’라는 자성 없이 총장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환풍구에 올라가 정부 탓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리대학은 학생당 최고의 교육비를 포함해, 작은 규모에 비해 대학 살림에 큰 경상비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에 합당한 학비를 낸다거나, 대학 시설의 유지 비용을 기꺼이 분담하겠다는 구성원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반면, 낙후된 시설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와, 개수된 주거 시설이나 체육 시설의 사용료가 인상되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높다. 현재 우리대학 학생들이 평균 10끼에 한 끼를 먹는다는 학생 식당이 엄청난 적자를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학생들 식사의 대부분이 학생 식당 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학생들을 학생 식당에 좀 더 유치해 보려고 외주를 고려하고 있는 복지회의 설명회에 참석하는 학생은 극히 소수에 불과한 반면, 외주는 식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어 안 된다는 반대의 목소리는 크게 들린다.
우리가 누리는 것에 대한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남의 몫이고, 자신은 혜택을 누릴 권리만을 주장하는 조직이나 사회의 앞날이 밝을 리는 없다. 우리대학의 크기가 커지고, 국제적으로 어려워진 경제 상황 및 낮아진 금리에 따라 재단의 기금 운용수익이 줄어들어, 전과 같은 씀씀이를 유지한다면 기금 잠식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혹자는 총장이 외부에서 기부금을 끌어들여 해결할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우이웃도 아닌 우리대학 구성원들이 누리고 있는 여러 가지 혜택에 대해 도움을 줄 생각이 우리 자신보다 더 절실한 사람들이 밖에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남에게 손을 벌리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를 돕지 않는 한 우리대학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국내외적인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고 대학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요즈음, 총장의 연임문제로 우리대학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에, 이사회의 신중한 판단과 현명한 대처를 기대한다. 이와 함께 모든 구성원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대학을 위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를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