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멘토가 된다는 것
누군가의 멘토가 된다는 것
  • 이성환 / 생명 13
  • 승인 2014.11.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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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며 집안일과 자신의 아들 교육을 친구‘멘토’에게 맡겼었다. 이후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기까지 10년 동안 왕자에게 멘토는 친구이자 선생, 상담가였다. 이후 이 사람의 이름은 인생을 이끌어 주는 사람을 뜻하는 멘토(mentor)라는 단어가 되었다.
나는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지했고 고민을 털어 놓았다. 내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내가 자칫 학교에 적응할 수 없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를 바로 세워주신 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2, 3학년 담임선생님들은 나의 고등학교 학창시절 모든 고민을 들어주셨고 나를 이끌어 주셨던 분들이다. 나는 이 분들에게 학창시절의 고민을 토로했고 많이 의지했다. 이분들이 있기에 나는 방황하지 않고 무사히 학창시절을 보냈다.
나는 현재 ‘가치배움’이라는 지식봉사단체에 소속돼 주말마다 경주의 한 중학교를 찾아간다. 작년에는 포항 기계중학교를 찾아갔다. 두 학교 모두 교육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다. 그곳의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보다 순수하다. 정말 착한 아이들이다. 나는 이런 아이들의 멘토의 역할을 해왔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나는 아직 미성숙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일이 더 익숙했다. 누가 봐도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에게 내가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서툴렀다.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됐다. 하지만 아이들을 매주 보고 친해지며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선 좋은 친구가 되어 아이들과 부담 없는 사이가 되기로 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4시간 씩 아이들과 대면하고 몸을 부대끼며 금방 아이들과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자 얼마 후 카카오톡으로 평소에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내게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학업, 연애, 교우관계... 고민의 주제는 다양했다. 나는 내 경험을 말해주며 상담을 해주었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점점 아이들이 내게 의지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내 말 한 마디가 아이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했다. 다시 부담이 됐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때의 즐거움과 책임감이 부담감보다 커서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1년 후 기계중 아이들은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나는 다른 중학교의 아이들을 맡았다. 이제는 다시 볼 기회가 없는 기계중 아이들은 가끔 연락이 오곤 한다. “쌤, 저 여자친구 생겼어요,” “쌤, 나 전교 20등 했어요.” 전화기 넘어 들리는 목소리가 전하는 일상적인 이야기와 고민, 여전히 나를 찾아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뿌듯하다.
아이들의 연락이 올 때마다 과거 내가 의지했던 선생님들 생각이 난다. 나는 그분 들 만큼 대단한 멘토는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멘토로서, 의지가 된다.’는 사실에 항상 뿌듯함을 느끼고 나의 가치를 찾는다. 아이들은 내가 나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해 주었다. 부족한 나를 찾고 의지하는 아이들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