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교육정책 진단
[특별기고] 교육정책 진단
  • 유대식 / 인문 교수
  • 승인 200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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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2001년 5월 유엔 인권기구가 우리 공교육의 낙후성을 지적하고 우리 정부가 의무교육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유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는 우리 공립학교의 낮은 교육수준이 학부모들로 하여금 사교육으로 자녀의 교육을 보충하도록 강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저소득층의 학부모들에게 과도한 재정부담을 안겨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초등학교 6학년까지만 무상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높은 경제발전에 걸맞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대학생과 대학원생 총수의 2/3 이상이 남성이라는 것은 남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리고 한국의 공교육제도 강화방안에 반드시 중등학교 무상의무교육 실시에 대한 합리적인 일정을 제시할 것을 권고했다. (Concludi ng Observations of the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Republic of Korea. 21/05/2001.)

모든 국민이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학교를 설치·운영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것은 반세기 전에 제정한 교육법 제8조였다. 그러나 정부는 50년이 넘도록 중등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하지 않아 급기야 유엔 인권기구가 대책 마련을 권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작년 11월 교육인적자원부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연차적으로 중학교 무상의무교육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유엔의 권고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우리나라가 진정 인적자원강국으로 세계무대에 부상하려면 무상의무교육을 고등학교까지 확대 실시해야 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교육재정이 경제발전의 걸림돌?’
정부는 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교육재정이 경제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시각 때문에 교육예산은 매년 최대한도로 삭감하여 우리 공교육은 만성적 재정궁핍에 시달려 왔다. 또 궁핍한 교육재정 뒤에는 아무도 감히 손을 못 대는 과도한 국방비가 다른 모든 분야의 예산을 위축시키는 작용도 하고 있을 것이다. ‘교육 재정이 정부 예산의 20%, GDP(국내총생산) 대비 4.7%가 된다고 하지만 총액으로 보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교육부장관의 고충은 일면 수긍이 간다. 또한 우리나라의 사립대학 운영비 중 ‘정부보조금은 전체의 4.4%에 불과하나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의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 보조금은 사립대학 총 운영경비의 10∼20%에 달한다’고 한다.

요즘 들어 정보화시대 지식기반사회의 산업은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됐기 때문에 ‘인재가 국부(國富)’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고 창의성과 수월성을 겸비한 인력양성이 시급하다는 주문이 교육계에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도록 예산상으로 항상 낮은 우선순위를 받아 온 우리의 교육제도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수많은 문제점만 노출하고 있을 뿐이다. 공교육 붕괴, 수능시험의 난이도 조절 실패, 교원 성과급 지급 문제, 경기도 고교 평준화 지역에 대한 학생 재배정 사태, ‘입시지옥’, ‘과대학급’, ‘중3병’, ‘콩나물교실’, ‘고액과외’, ‘치맛바람’, ‘촌지’, ‘왕따’, ‘체벌’, ‘교육이민’…. 오랜 시간동안 온 국민을 괴롭혀온 사회 병리현상이라며 교육부장관이 나열한 교육 문제들이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교육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을 외면하고 피상적인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온 소산이다.

“우리나라가 2005년까지 세계 10위권의 인적자원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의 여건과 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대학의 자율화와 다양화를 적극 추진해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대통령이 교육 각료들에게 강조했다는 보도를 최근 접한 적이 있다. 교육계에 희망과 포부를 주는 비전이다. 높은 목표를 정해 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진력하는 것은 좋으나 ‘2005년까지 세계 10위권의 인적자원 강국으로 도약’하는 일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의무교육 역사의 길고 짧음이 절대적인 잣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선진국의 예를 보면 의무교육을 시작한지 100년이 넘는다. 미국은 1852년, 영국은 1860년, 프랑스는 1872년, 일본은 1885년부터 실시하였다. 우리는 의무교육을 시작한지 겨우 50년 남짓인데 그나마 그 짧은 기간에 유난히도 많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시련과 고난을 겪어 왔다. 오늘날 교육의 난맥상의 많은 부분은 동족상잔의 비극, 전쟁의 폐허가 가져온 빈곤, 그리고 금융경제의 파탄 때문에 정부가 교육을 소홀히해 온 결과일 것이다.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몇가지 제언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가 이처럼 확고하다면 우리 교육의 앞날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선, 대학교육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먼저 교육부가 대학입시에서 손을 떼야 한다. 수능시험은 대학에서의 수학능력 유무를 가리는 인증시험으로 바꾸고, 그 이후의 실질적 학생선발권은 대학마다의 독자적 기준에 의하도록 입시제도의 대폭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학생의 학교 선택권과 학교의 학생 선발권이 존중되는 교육제도를 만들 수 있다. 대학교육을 위해서 교육부가 할 일은 대학이 스스로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재정지원을 하면서, 비리나 부정으로 부패하지 않고 인류문화 발전에 필요한 지식을 창출하고 창의적인 인력자원을 양성하도록 사후 평가를 통하여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촉진하는 일이다.

초-중등교육의 여건과 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우선 대학자율화를 이루어 놓고 공사립 이원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고교평준화 정책은 원래의 취지대로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하여 의무교육을 받은 중3 학생들이 입시를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틀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능력별 학습을 제도화함으로써 우수한 학생이나 학습이 부진한 학생이나 모두 각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할 수 있는 공교육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낮에는 교실에서 잠자고 밤에 사설학원에서 자기 수준에 맞춰 공부하는 폐단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학교내 능력별 학습제도의 개발이다.

교육부 발표에 의하면 2002년 2학기부터 전국에 134개 영재 학급과 67개 영재 교육원이 설치돼 초-중-고생의 약 0.1%인 1만여 명이 영재 교육을 받게 된다고 한다. 모처럼 접하는 희소식이다. 그러나 이 영재교육은 전국 초-중-고생의 0.1%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다. 능력별 학습제도로 모든 공립학교에 영재교육을 실시하여 누구나 받을 권리가 있는 국민기본교육의 하한선을 계속 높여가야 한다.

한편으로는 고교평준화의 기본틀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립학교를 자율화 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1974년 이후 고교평준화 정책은 정부가 담당할 공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사립학교로 하여금 대행하게 해왔다. 이제는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동시에 사립학교에 학생선발, 등록금 책정, 교과과정 편성 등의 자율권을 부여하고 교육의 다양화, 특성화를 도모할 때다. 그 대신 정부는 그 동안 지급해오던 사립학교 지원금(2002년 기준 2조8386억원)이 줄어들게 되므로 이를 국·공립의 교육여건 개선 비용으로 전용할 수 있다.

공교육 상향화 비용의 또 다른 조달 방법은 일부 낭비되고 있다는 군사비용을 삭감하여 교육재정에 추가하는 것이다. 한 군사평론가에 따르면 우리의 70만 대군은 전투병력 40%, 후방인력 60%로 구성되는데, 40만 후방병력을 20만으로 줄이면 국방에 아무 지장없이 연간 3조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절약한 3조원을 매년 공교육 재정에 추가하는 것이다.

공교육의 중요성 간과하지 않기를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할 교육사업이 또 하나 있다. 국(검)정 교과서 편찬 제도를 폐지하고 교과서 자유 발행제로 전환하는 일이다. 전국의 모든 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교육을 강요하는 현행 교과서 제도는 암기와 입시에 길든 ‘규격형 획일인간’을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창의성은 다양한 독서와 경험을 통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숙고하며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을 거쳐야 양성할 수 있는 것이다. ‘코리아 프로젝트 2020’의 젊은 사상가들이 제안한 바와 같이 “출판사가 자유롭게 교과서를 제작하고, 각 과목별 전문교사 연구회가 이를 평가하며, 교사·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지역(또는 학교)별 ‘교과(커리큘럼) 위원회’가 교과서 집필기준 설정 및 채택을 담당하는 ‘자유 발행제’로 전환” 하여 창의적인 인적자원을 키우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이 만드는 제도에 완벽한 것이 있을 수 없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전국의 어린이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나라를 이끌어 나아갈 일꾼으로 키워내는 동안 우리의 의무교육제도는 끊임없이 봉착하는 많은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은 적어도 10년, 20년은 내다 보며 다단계의 치밀한 단기계획을 수립하여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4년에 7명의 장관이 바뀌는 교육부는 전시효과를 노리는 조령모개의 연속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해왔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의무교육제도에 관한 한 ‘정부는 교육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예산 책정이 교육부문에 최상의 우선순위를 두도록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