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에 대한 생각
가치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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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0.1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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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교정의 나무는 물 올리기를 멈추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메말라가는 나뭇잎은 곧 단풍이 든 후, 낙엽으로 떨어지고, 나무는 하나의 나이테를 만들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가끔 하나의 의견에 대해 ‘생각이 깊다’, ‘넓다’, ‘짧다’, ‘좁다’와 같은 표현을 쓴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의 생각과 의견은 그의 경험에 기초한다. 그 경험은 그가 속해서 살아온 환경에 따른다.
각자가 경험한 환경은 ‘하루하루 삶의 중요함’, ‘권력에 대한 큰 관심’, ‘금전적 큰 관심’, ‘학문적 관심’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므로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혹은 학문적 관점에서 각자 달리 생각하고, 의견을 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정치와 경제적 관점을 두루 살펴 생각하기도 한다. 나아가 각자의 생각은 그가 경험한 사회에서 중요시하는 공간적 범위(즉, 개인, 가족, 소규모 집단, 사회, 국가, 세계, 등)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개인적이며, 어떤 사람은 극도의 인류애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의 생각이 짧은 것은 그가 생각할 때 고려하는 시간이나 공간적 길이가 짧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을 하는 데 있어, 바라보는 내용과 생각하는 시공간적 범위가 한 사람의 의견 형성에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한 사회의 이념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는 각자가 지닌 가치의 잣대라고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치 잣대는 무엇일까? 아마도 시카고 학파와 빈 학파가 주창한 신자유주의일 것이다. 왜냐하면 20세기 후반 냉전을 종식시키고, 전세계 질서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정책이 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시장적 가치를 철저히 강조하고, 보호하려 한다. 그러기 위하여 심지어는 정치적 노력도 아끼지 않아서, 정책 성향은 극단의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그 결과는 장벽 없이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화로서, 금융자산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각종 FTA가 출현하였다. 그리고 무한 경쟁을 자연스레 여겨, 사회의 많은 집단은 철저한 관리와 이윤 추구에 관심을 쏟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IMF 사태, 미국의 거대 금융기업의 도산, 등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도 존재하고, 냉전 종식 후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위상도 예전만 못한 듯하다. 지금 떠오르는 질문은 ‘신자유주의적 가치 잣대를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을까?’이다.
현재 대학의 운영에 있어서도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지배적이다. 대학의 랭킹 매기기, 한 대학의 존폐를 위협하는 MOOC의 발현, 수익 창출을 위한 각종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대학마다의 특성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학에서 출발한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사회 적응을 거쳐, 다시 대학 운영의 잣대로 영향을 미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 있었던 Harvard 대학 Lawrence Summer 총장의 사례는 비록 다른 사유로 종결되었으나, 그 밑바탕에는 경제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Summer 총장의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대학의 전통적 가치 사이의 갈등이 짙게 깔려 있다.
우리는 가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대립한다. 하지만 이미 밝혔듯이 의견이란 각자 겪어온 경험에 근거를 둔 가치 잣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이는 궁극적으로 개인적 경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것으로, 그리 적절하지 않다. 개인적 문제에 관하여서는 서로의 가치 잣대가 다름은 인정하고 이해함으로써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함께 나아가야 하는 어떤 집단의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은 그 집단의 운영에 많은 갈등을 초래한다. 따라서, 어떤 집단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개인이 아닌 집단의 관점에서 가치 잣대를 조정하여, 갈등을 해소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생각의 대립은 각자의 가치, 이념에 집착함으로써 발생한다. 하지만 가치와 이념 쌓기를 생명으로 여겨야 하는 학문의 영역에서는 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대학은 대립의 장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학문 이외의 영역에서는 집착을 거둘 수도 있어야 한다. 노자의 사상을 빌면, 학(學)은 쌓는 것이고 도(道)는 비우는 것이다. 그의 중심 사상인 무위(無爲)는 가치와 이념에 대한 집착을 비워 도(道)를 이루는 것이다. 북경의 자금성 교태전(주: 대립하는 두 요소가 서로 교류하여 큰 것을 이루는 곳이라는 의미)에는 중국의 전통적 통치 사상인 이 두 글자가 정중앙에 걸려있다. 나아가 ‘위무위즉무불치(爲無爲則無不治)’라 하였다. 집착 비우기를 행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생각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시키는 역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의 몫이다. 그래서 Summer 총장의 사례와 노자의 사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