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가상의 차이
현실과 가상의 차이
  • 최재령 기자
  • 승인 2014.09.2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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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가상세계의 한 예를 꼽으라 하면 대부분이 게임을 말할 것이다. 가상세계 속 대리인, 아바타의 조작으로 시작되는 게임은 모든 것이 사용자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성질인 성별을 정할 수 있다는 것부터 범접할 수 없는 능력들을 부여할 수 있는 것까지, 게임 속에서는 사용자가 신적인 존재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아바타는 초기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죽은 아바타를 없었던 일처럼 다시 살리거나, 아바타나 그보다 상위 개념인 계정을 삭제하는 경우이다. 필자는 이러한 초기화의 가능 여부가 현실과 가상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리셋 증후군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켜는(리셋: reset) 것처럼 현실도 리셋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증상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인간관계가 있으면 쉽게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부터, 그 증상이 심하면 자살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 대부분은 이 증상의 원인을 게임에서 찾고 대상은 아동을 말한다. 어릴 적부터 게임에 노출되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게임이 아닌 급속히 변화하는 기술이나 유행 때문에도, 아동이 아니라 성인에게서 이러한 리셋 증후군의 증상, 혹은 그 경계에 있는 것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짧아진 휴대전화의 교체 주기가 좋은 예다.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기업은 평균적으로 일 년에 한번 신형 제품을 내놓는다. 스마트폰이 개발된 이후에 나타난 경향이다. 신제품은 기능이 추가되거나, 이전과 대비해 성능이 향상되지만 큰 변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휴대전화를 기업의 출시일과 맞춰 매년 바꾸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 Strategy Analytics) 2013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단말기 교체율이 67.8%로 세계 1위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리셋 증후군의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이미 리셋 증후군에 걸려 익숙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가상과 다르게 현실에서는, 초기화를 할 때 소모되는 기회비용이 있다. 가상에 익숙해져서 이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하게 초기화를 한 이후의 결과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즉,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무엇이든 아낄 줄을 알아야 한다. 또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초기화를 해온 것처럼 없었던 일인 듯 넘어가지 않고, 직접 부딪쳐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현실이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는 우리에게 땅, 즉 밑바탕이다. 가상에서는 땅 없이도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다. 항상 땅을 주시하여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초기화를 하기 앞서 그 가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한다면 보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