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이 국가라는 거대한 단체의 리더에게만 필요한 덕목은 아니다. 작은 모임의 일개 조직원에게도 위치에 맞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신문사에서 배운 소중한 배움 중 하나이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신문 기자를 거치며 학생 기자라는 직함을 단 지 7년 차가 되어가지만 언제나 ‘학생’에 숨어 ‘기자’라는 책임감을 가졌던 적이 없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즐겼을 뿐, 내 위치에 따르는 책임은 지지 않으려 했었다. 그러고는 ‘나는 그저 즐거워서 일하므로, 조금 헐렁해 보일 수 있다’며 자신을 포장하곤 했다. 그러나 대학신문사에 들어오면서, 정확히 말하자면 신문사의 선배들을 보고 책임감이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짧게는 2년부터 길게는 3년 반까지 신문을 만든다는 기자가 지녀야 할 책임감으로 다져진 분들이다.
이제 어느덧 내가 신문사 내 최고참 학번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야 선배가 얼마나 큰 무게를 어깨에 얹고 있었는지 실감이 난다. 선배의 여러 방식에 대한 호불호는 제외하고서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문에 대한 자부심과 기자로서의 책임감만큼은, 그리고 이를 길게는 3년 반까지 유지했다는 사실만큼은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든 흔적은 남지 않아도 사람이 난 흔적은 너무도 크다. 특히 자기 일을 묵묵히, 꾸준히 책임감을 가지고 해운 사람의 경우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물론 그 사람은 리더였을 수도, 어느 순간에는 일개 조직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난 자리를 느끼게 하는 건, 그 사람의 직위보다도 내가 가볍게 비난한 일들이 사실은 상상 이상의 책임감을 가지고 수행해왔던 일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아닐까. 언제나 비난은 쉬워도 비판은 어렵다. 비판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난까지도 묵묵히 받아들이고 책임감 있게 자기 일을 수행한 모습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니체는 ‘책임을 방기하려 하지 않으며 또한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려 하지도 않는 것은 고귀한 일’이라고 책임감 있는 사람을 극찬했다.
어느덧 학기가 반 이상 지나갔다. 내 자신이 책임감을 가지기를 기다리면서, 고귀한 책임감을 보여주며 가르쳐 준 곳인 신문사에 감사한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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