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리히텐슈타인, <꽝!>- 전쟁도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기이한 사회
로이 리히텐슈타인, <꽝!>- 전쟁도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기이한 사회
  • 우정아 / 인문 교수
  • 승인 2014.05.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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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화가, 로이 릭텐스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은 만화책을 베껴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사실 릭텐스타인은 동시대의 팝아티스트인 앤디 워홀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였다. 그러나 몇 년 전, 그의 [행복한 눈물]이 대기업의 비자금 사건과 연루되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이후, 이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작품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기 보다는 그 가격이 충격적이었다. 오래된 만화책에서나 볼 법한 촌스러운 아가씨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 수십억 대를 호가한다니, 작가로서는 진정 ‘행복한 눈물’을 흘려 마땅하겠지만, 평범한 이들은 과연 이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릭텐스타인은 인기 있는 만화책의 한 장면을 골라 세부를 수정하여 큰 캔버스에 유화로 옮기면서, 만화책의 전형적인 포맷은 그대로 유지했다. 단순하게 그려진 인물들은 검은 윤곽선과 몇 가지의 원색으로 채워졌고 정사각형 틀 안에 말풍선과 함께 등장한다. 색면은 균일하게 칠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작은 점으로 채웠다. 요즘에도 값싼 신문이나 잡지책의 원색 도판을 잘 들여다보면 색점이 망처럼 빽빽하게 찍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색을 점으로 분할하여 찍어내는 인쇄기법은 인쇄기술자였던 벤자민 데이의 이름을 따서 벤데이닷(Ben-Day dot)이라고 부른다. 릭텐스타인은 벤데이닷을 모방하여 하나하나 손으로 캔버스에 작은 점을 찍었다.
그 그림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 로맨스이거나 전쟁담이 대부분이다. 만화책이 결국은 소녀들이 즐겨보는 로맨스물이거나 소년들이 좋아하는 전쟁만화로 나눌 수 있으니, 만화를 따라 그린 릭텐스타인에게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꽝!]은 용맹한 주인공이 마침내 적군을 물리치는 절정의 순간, 모든 소년들이 손에 땀을 쥐고 열광하는 감동의 장면일 것이다. 그 장면이 눈부신 조명 아래 세련되게 단장된 미술관 벽에 걸린 채, 많은 이들에게 가벼운 즐거움을 주는 미술품이 되었다. 우리는 이 앞에서 천문학적인 그림 값을 이야기할지는 몰라도 진지하게 전쟁을 논하지는 않는다. 전쟁이 바로 이 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전쟁터에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더라도 말이다.
20세기의 베트남 전쟁이 ‘티비 전쟁’이었다면, 21세기의 아프간 전쟁은 ‘인터넷 전쟁’이었다. 전세계인들이 마치 컴퓨터 게임을 보듯이 모니터 앞에 앉아 전쟁을 구경을 했다. 어디선가는 실제로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고, 다른 어디선가는 전쟁이 신나는 구경거리가 되고, 또 다른 곳에서는 값비싼 미술품으로 거래되는 기이한 현상. 릭텐스타인의 작품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매스미디어 사회의 현실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역사적 비극마저도 자극적인 상품으로 만들어 생산하고 소비한 후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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