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글쓰기
삶을 바꾸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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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2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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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해리포터를 읽고 반해버린 나는 훗날 한국의 조앤 롤링이 되겠노라고 야심 찬 선언을 했었다. 그리고 그날로 연습장을 사서 엉터리 판타지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게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비록 조앤 롤링이 되기 위한 여정은 험난했고 어느새 무수히 잊혀진 꿈들 중 하나가 되고 말았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수많은 생각을 연습장에 빼곡히 적어 넣었다.
그런 나에게 글을 대체 왜 쓰는 거냐고 묻던 사람들이 참 많았다. 어설프고 유치한 글을 비웃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썼다. 그래야 행복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글쓰기는 나의 ‘취미’였다. 하지만 점점 더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글쓰기는 ‘그냥 취미’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면을 빌려 여러분에게도 전하고 싶다. 삶을 바꾸는 글쓰기를 함께 하자고.
우리는 영화를 보며 그 속의 주인공들에게 몰입한다. 늘 새로운 일들이 가득한 그들의 삶을 보며 대리만족한다. 그러나 진짜 현실에서는, 우리는 종종 삶의 변두리에 머무를 뿐이다. 세상은 나 하나쯤 없어도 잘 돌아갈 거라는 생각, 나는 이 세계의 주변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우리를 짓누른다. 송강호는 영화 속에서 서울을 위협하는 괴물을 결국 물리쳤지만, 만약 내가 그 세계 속에 있었다면 아마 영화 초반부에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불쌍한 행인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는 그런 생각 말이다.
우리의 현실은 지루함 투성이다. 그 누구도 겪지 못했을 세기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들 하는 비슷한 연애였고, 왜 나에게는 이런 시련이 일어나는지 하늘을 원망했는데 지나고 보니 옆의 친구도 똑같이 겪고 있던 시련이었다. 어릴 적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뭔가 멋진 일을 할 줄 알았는데 실은, 그냥 수많은 군중 속의 한 명이었던 거다.
하지만 잠깐 시간을 돌려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 보자. 우리 대부분은 초등학생 때 밀린 방학 일기를 꾸역꾸역 쓰면서 ‘무언가를 쓴다는 것’에 학을 뗐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매일 똑같은 생각을 하는데 그렇다고 매일 똑같은 일기를 쓸 수는 없는 딜레마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똑같은 하루는 사실 똑같은 하루가 아니었다. 어제의 햇살과 오늘의 햇살이 다르듯이. 일 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조금 달라졌듯이. 그 변화 사이에는 무수히 다른 내가 있고, 그렇게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도 다르다. 그냥 지나치기에 미처 느끼지 못할 뿐이다.
글쓰기는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우리의 흔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백지 위에 주워담는다. 우리가 무시하고 지나쳐버렸던 일상의 ‘사소한 다름’은 글쓰기를 통해서 ‘진짜 다름’이 된다. 글쓰기가 우리의 삶에 생소함을 선물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 속의 사소한 세부 사항들을 쉽게 무시해버린다.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오늘은 과제를 했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했다. 일주일 전에도 똑같았는데. 끝.”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소함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당신의 어제와 오늘이 어떻게 달랐는지부터 시작하자. 예컨대 이런 건 어떨까. “오늘 풀었던 과제는 저번의 과제와는 조금 달랐다. 교수님은 원래 책에는 없는 문제를 자주 내시는데 이번에는 책에 있는 문제들이 많이 나와서 풀기가 더 쉬웠다. 아무래도 학기말이 되어 가니 교수님도 새로운 문제를 생각해서 내기엔 바빠지신 걸까? 학생들만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는 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수업을 준비하는 교수님들도 전혀 쉽지는 않으시겠지.“
금세 흩어져버리는 의식의 흐름과는 달리, 글로 남긴 생각은 흔적이 된다. 그 흔적을 곱씹다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꼬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이 모여서 정말로 어제와는 다른 나를 만들어낸다. 당신은 오늘 새로운 생각을 하나 남겼다. 물밀 듯이 밀어닥치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 멋진 일이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생각들을 발견해가면서 우리는 시간의 파도에 휩쓸리는 삶의 주변인이 아닌 파도 위에 선 삶의 주인공이 된다. 때로는 비참한 일들을 기록하면서도 당신은 그것이 그냥 흔해빠진 불행 중 하나가 아니라 또 다른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단지 남들에게 멋진 문장을 보여주며 뿌듯함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글쓰기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때로는 울게도 할 것이다. 그게 글쓰기가 ‘삶의 방식’인 이유이다.
그러니 문득 당신의 오늘에서 사소한 다름을 발견하는 새벽이 온다면, 언제건 늦지 않았다. 늘 수식만 끄적이던 공책에 낯간지러운 표현들을 적어 내려가는 건 영 어색하겠지만 어쩌면 그게 당신의 삶을 바꿀지도 모르는 법. 흰 종이를 펼치고 연필을 들어보자. 이제 우리 삶이 한 편의 소설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