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오페라 극장을 폭파하라.”
“모든 오페라 극장을 폭파하라.”
  • 양은영 / 인문 대우조교수
  • 승인 2014.03.0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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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신문은 2014학년도 1학기를 맞아 음악, 미술, 건축의 세 주제로 두 번씩 총 6회의 예술 테마연재를 문화면에 담는다. 예술의 현대적 동향과 기본적 특징을 집중적으로 알림으로써, 독자 여러분의 교양이 확충되고 심미적 욕구가 자극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지금은 살아있는 전설이 된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 ~ )가 젊은 시절 한 발언이다. 당시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폭탄발언에 대해 훗날 그는 “역사는 거대한 짐이었기에, 단지 과거로부터 뛰쳐나오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을 찾으려 했었던 것뿐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실재로 오페라 극장을 폭파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피에르 불레즈를 비롯한 역사상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보수와 진보의 차이만 있었을 뿐 나름대로 자기만의 새로운 예술 세계를 추구해 왔다. 음악사에서는 보통 300년 간격으로 새로운 음악의 시대가 열렸다. 1300년경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전환기의 ‘Ars Nova’, 1600년경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의 전환기의 ‘Le Nuove Musiche’, 1900년경 낭만주의 시대에서 현대로의 전환기의 ‘Neue Musik’, 이 모두가 새로운 예술 또는 새로운 음악의 전환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그 이전 시대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음악을 추구했던 예술가들이 자신의 음악을 지칭할 때 사용했던 용어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초 ‘Neue Musik (새로운 음악)’의 횃불을 들고 현대음악으로 돌진한 진보주의자들은 어떤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었을까? 과거로의 탈피를 위해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 1951)는 1912년 <오케스트라를 위한 다섯 개의 작품>에서 300년이 넘게 세상을 지배해 왔던 조성 체계를 뿌리째 무너뜨렸다. 그는 으뜸음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장단조 음계 대신 한 옥타브 안에 있는 12개의 음에 번호를 붙여놓고 똑 같은 빈도로 사용했다. 당대의 비평가들은 멜로디도 화음도 찾아 볼 없는 쇤베르크의 음악을 ‘미래의 음악’이라며 비꼬았고, 관객들은 이 괴이한 음악에 놀라서 심지어 극장을 뛰쳐나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음악’ 혁명은 계속되었다. 예컨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 1971)는 전통적 리듬을 변화의 대상으로 택했다. 그는 1913년 발표한 러시아의 민속제전을 소재로 한 발레 <봄의 제전>에서 일상의 걸음이나 심장 박동을 닮은 서양음악의 규칙적인 리듬 대신 원시적이고 폭발적인 변박을 사용했다. 역시 관객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우아한 발레를 기대하고 왔던 파리의 상류층 관객들은 괴상한 음악과 우스꽝스러운 안무에 야유를 퍼부으며 공연장을 나갔다고 한다. 주목할 것은 초연 때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그의 작품이 지금은 가장 자주 연주되는 클래식 레퍼토리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오페라 극장을 폭파하라는 피에르 불레즈의 언설은 전통 음악의 조성체계와 리듬, 강세와 음색까지 그 범위를 확대했으며, 마치 오페라 극장을 폭파하듯이 기존의 규칙을 남김없이 무너뜨리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마치 수학자나 컴퓨터 프로그래머처럼 음높이, 강세, 음색, 리듬형을 모두 숫자로 치환해서 도표처럼 만들어버리는 총렬주의(total serialism)를 고안해냈다.
“현대음악을 좋아하십니까?” 라고 물으면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현대음악’ 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연아가 소치 동계 올림픽 프리스케이팅에서 사용한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의 ‘아디오스 노니노’나 CF에 자주 나오는 칼 젠킨스(Karl Jenkins, 1944~ )의 ‘팔라디오’를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음악도 현대음악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대중에게 외면당한 현대 음악은 무조건 실패한 음악인가? 그렇지 않다.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입힌 개성 넘치는 현대 음악의 탄생은 선배들의 전통을 타파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상해보라! 만약 세상에 전통을 고수하는 음악가들만 존재해왔다면 우리는 오늘도 바흐가 쓴 것 같은, 아니 심지어 중세시대의 음악을 들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