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에서 인공위성까지 내 손으로, 과학기술의 보편화와 메이커 문화
바늘에서 인공위성까지 내 손으로, 과학기술의 보편화와 메이커 문화
  • 곽명훈 기자
  • 승인 2013.12.04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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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는 ‘Do It Yourself’의 약어로, 전문 업자나 업체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제작하는 개념을 말한다. 보통 목공예나 옷 수선, 인테리어와 같은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다. 하지만 최근 ‘테크 DIY’ 또는 ‘메이커 문화’라는 새로운 흐름이 생기며 엔지니어링과 예술이 결합된 개인 중심의 제작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2000년도 중반, 미국의 <Make>라는 잡지가 제품 제작기술과 수선 기술을 제공하는 등 테크 DIY에 필요한 오픈 소스를 공유하면서 소위 ‘메이커 문화’가 본격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일반인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DIY 팁과 노하우를 공유하며 집단 지성을 형성해나갔다. 이에 <Make>지는 메이커 페어(Maker faire)라는 박람회를 조직해 꾸준히 개최지역을 확장해나갔고, 그 결과 북미 전 지역, 유럽,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에서도 메이커 페어가 열려 수많은 개인 제작자들이 자신들만의 물건을 뽐내는 세계 규모의 박람회로 발전했다. 박람회의 참가자 수는 매년 약 1.5배씩 증가했으며, 작년에는 33만 3천 명이 박람회를 참관하기 위해 찾아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6월 ‘메이커 페어: 서울’이 개최되어 2회를 맞이했고, 초등학생, 중소기업인을 포함한 50여 팀이 참가해 각자의 독특한 창작물을 전시하며 지식을 공유하는 장이 되었다.
한 가지 눈여겨볼만한 점은, 메이커 페어는 참가 물품에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참가자들이 단순 수공예보다는 전자부품을 사용한 기계장치를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디지털 제품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이 단순히 정적인 물건보다는 자신의 요구에 맞게 작동하는 물건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테크 DIY가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은 아래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테크 DIY를 하는 데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각종 전자부품의 성능이 좋아지고 가격이 하락해 일반인들이 부담되지 않는 가격 선에서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 예로, 우리나라의 송호준 씨가 세계 최초로 개인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는데, 그 제작비용은 불과 4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둘째, 인터넷상의 오픈 소스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과학자나 공학자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복잡한 전공지식이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되고 있다. 또한 기계의 부품들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사물들을 활용해 만드는 노하우가 퍼져 더욱 접근 장벽을 낮췄다. 가령 수신 안테나를 만들 때 평소 사용하지 않는 줄자를 해체 후 재조립해 이용하거나, 옷걸이를 잘라 속의 철사를 이용해 만들 수도 있다.
셋째, 제어 프로그램을 이용한 제품의 움직임 구현이 과거에 비해 훨씬 용이해졌다. 일반인이 쉽게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게 시판하는 ‘오픈 소스 하드웨어’의 보급을 통해 수많은 개인 제작자들이 창작품의 움직임을 더욱 수월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유명한 오픈 소스 하드웨어로 ‘아르뒤노 마이크로컨트롤러’라는 플랫폼이 있는데, 초인종, 물탱크 심도 측정기, 게임기 제작 등 프로그램화된 전자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가격은 30 달러 정도로 아주 저렴하게 구할 수 있으며 프로그램 소프트웨어도 무료로 제공된다. 이처럼 저렴하고 무궁무진한 응용이 가능한 플랫폼이 시판되어 메이커 문화가 확대될 수 있었다.
‘롱테일 경제학’으로 유명한 크리스 앤더슨은 자신의 저서 <Makers>를 통해 메이커 문화가 창조할 3차 산업혁명을 예견하며, 3D 프린터를 비롯해 앞으로 10년 간 일어날 기술 혁명을 설명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제작사를 찾지 못하면 제품을 출시하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개인이 상품을 직접 제작해 시판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크리스 앤더슨은 이처럼 개인이 스스로 브랜드를 창출해 사업할 수 있게 된 원인을 ‘제조업의 디지털화’라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 누구나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것이며, 다시 말하면 개인의 브랜드화 시대가 한 발짝 다가왔다는 것이다. 수많은 개인 출판 전자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평범한 전업주부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살려 인터넷 블로그 플랫폼을 이용한 쇼핑몰 CEO가 되고 있는 시대에, 메이커 문화를 이끄는 테크 DIY 제작자들의 시대도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