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위한 변명
시인을 위한 변명
  • 김상수 기자
  • 승인 2013.12.0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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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길
한 번쯤은 멋진 문구를 쓰고 싶은 시간이 있다. 유명 인사의 명언, 영화 속의 명대사처럼 멋진 말 한마디를 남기고 싶어질 때, 만약 잠이나 술에 취해 상태가 몽롱하다면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낯간지러운 한마디를 남기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물론 많은 경우 다음날 오글거리는 손끝을 달래며 최대한 빨리 지우게 된다.
SNS를 사용하다 보면 ‘오글오글’한, 허세 섞인 글들을 참 많이 보게 된다. 혹자는 차라리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임을 강조한다. 물론 자기 자신을 ‘은근슬쩍’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 허세를 숨긴 글들 때문에 사람들이 오글거림과 허세를 느끼는 감도는 높아진다. 이젠 오글거린다는 말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잘 다듬은 감성들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러한 인터넷 세상에서 가장 많이 잡아먹힌 건, 바로 시다.
파블로 네루다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 20번 시에서 “오늘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써야지 /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가끔씩,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라고 말한다. 허세일까? 그러나 살아가며 이 시의 의미를 직접 겪은 사람에게는 오글거림과는 다른 감정이 찾아올지 모른다. 시를 읽는 데는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의 시의 의미란 시험을 위해 외울 내용에 불과했지만, 사실 시의 의미는 살아가며 공감하면 그만이다. 억지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
류시화 시인은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 그 사람 안의 시를 듣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아마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사람이 시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가 시와 너무 멀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대와 대화하고 공감하는 법은 흔해빠진 ‘대화의 기술’ 따위의 책이 아니라, 다 읽은 시집의 가장 마지막 장에 쓰여 있다. 시를 읽자, 오글거리는 손끝을 모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