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듣고 쓰기 전에 보라
말하고 듣고 쓰기 전에 보라
  • 유온유 기자
  • 승인 2013.11.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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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길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육은 유치원 때 다 이뤄진다고 하더니 우리대학에도 교육 복고ㆍ회귀 바람이 부는지, 초등학교 교과서 표지에 익숙한 글씨체로 말하기, 듣기, 쓰기 포스터가 내걸렸다. 단풍이 들 새도 없이 가을이 지나고 찬바람에 낙엽이 쌓여가는 날씨에 포스터가 세차게 나부끼는 것을 보며 문득 올해는 여무는 계절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흔여덟 개의 계단을 오르내린 지가 벌써 3년째인데 익어가는 과실이 없다는 것은 환경이 이상해진 것도, 시간이 빠른 것도 탓할 수 없음은 알고 있다. 아지랑이 같은 꿈에 젖는 봄이 지나고 종종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던 여름이 지났는데 바로 겨울이 올 줄 알았으면 코스모스 꽃밭이나 가볼 걸 하는 후회도 한 스푼 넣어서 커피 한 잔 마신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것이, 옆에 어떤 사람이 있어도 나는 나 자신이므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도 참 많은 씨앗이 심긴다. 그중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살던 별에 매일 아침 솎아내야 했던 바오밥나무 씨앗처럼, 보이지 않다가도 뿌리를 내리면 마음이라는 조그만 별에 구멍을 내 버릴 수 있는 씨앗도 있다.
각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내디딜 준비하는 즈음하여 알게 된 것은 ‘독선’이라는 씨앗이 정말 무섭다는 것이다.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다른 생각을 제시하는 사람과 의견을 조율하게 된다. 독선은 예상치 못한 비판에 이성적인 논의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하고 자신의 희망 사항과 다른 측면에서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못하게 만든다. 문제는 타인과 단체에 대한 일종의 폭력을 행사해놓고 지조와 패기라고 합리화하기 쉽다는 점이다.
누구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는 볼 수가 없다. 당연하고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권력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통찰했던 카이사르가 한 말이다. 대부분이라는 말은 다수를 위한 변호인 것과 동시에 소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조감도를 놓치지 않고자 노력하는 소수야말로 지도자로 소리 없이 영글어가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