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이 버린 땅, 적정기술을 입히다
첨단기술이 버린 땅, 적정기술을 입히다
  • 손화철 /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 승인 2013.11.0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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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계가 주도하는 한국의 적정기술은 세계적으로 특별한 사례

적정기술의 열풍이 거세다. 7~8년 전 개신교인 공학자들을 중심으로 적정기술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될 때만 하더라도 ‘착한 공학자들의 선행’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2013년 현재 중ㆍ 고등학교, 대학, 국제구호단체, 기업, 국가가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적정기술을 통해 각종 교육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과학기술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할 이 뜻깊은 발전을 잘 이어가기 위해 한국 적정기술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과제를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적정기술 운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하다. 우선 이 흐름을 공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대학의 공학 교육에도 일부 반영되었으며 공학도를 대상으로 하는 경진대회, 워크숍, 아카데미, 기업 주관 공모전 등을 통해 적정기술이 널리 알려졌다. 이는 서구 적정기술의 역사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마하트마 간디와 슈마허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그 기원을 찾는 적정기술 개념은 공학보다는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에 속해 있었고, 적정기술에 관심을 가졌던 공학자들은 별난 사람 취급을 받곤 했다.
급속도의 산업화와 기술 진보를 이루는 가운데 ‘더 나은 기술’은 곧 무조건적인 선으로 받아들여온 우리나라에서 이 운동이 갑자기 일어나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물론 적정기술을 low-technology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최첨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공학계에서 적정기술이 살아남은 것은 신기할 정도다.
또 다른 특징으로 적정기술이 자신보다 남을 향하고 있다는 면을 들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적정기술은 일차적으로 제3세계를 돕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공학자와 공학도가 해외 저개발국에 직접 나가 적정기술을 보급하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반면, 현대기술 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나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적정기술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국의 적정기술이 이러한 특징들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급속한 발전에 따른 반성적 성찰, 혹은 피로감을 꼽을 수 있겠다. 과학기술 경쟁에서 선두 그룹에 속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기술선진국들을 맹목적으로 추격하던 모습을 버리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배가 불러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과는 다르다. 개인과 국가가 처한 객관적 상황이 바뀌면서 새로운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니, 우리나라의 경제적, 기술적 발전을 주도한 공학자가 그러한 변화에 민감한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증폭되는 이와 같은 맥락을 명확히 인지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이 운동은 자칫 용두사미로 그칠 수 있다. 한국의 적정기술이 좀 더 건설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발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적정기술을 단순히 남을 돕기 위한 공학적 방안이나, 효과적인 공학교육 실습의 자료, 공학자의 개인적 책임감의 실현으로서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적정기술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거나, 공학교육에서 새로운 방법론이 대두하거나, 너무 이상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적정기술 개발에 대한 개인들의 의욕이 잦아들 때 대처할 방법이 없다.
적정기술이 한 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서는 그 외연이 지금보다 넓어져야 한다.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인류 전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적정기술 운동의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한다. 그 연장 선상에서 저개발 국가뿐 아니라 선진국들에서 사용할 ‘적정한’ 기술에 대한 공학적 고민이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학과 인문학의 소통, 공학자와 시민들의 소통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우리는, 특히 공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의 함의에 대하여 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실 이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적정기술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귀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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